[포니의 한국 블로그]금방 사라지는 식당… 서울의 영혼을 찾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1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벤 포니 미국 출신 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벤 포니 미국 출신 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2년 전부터 한국에 살고 있는 영국 친구와 매주 도전을 하나씩 한다. 바로 고깃집 탐방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깃집을 매주 찾아가는 것이다. 평소 고기를 좋아하기도 했고 또 한국에 있는 다양한 고깃집들에 놀랐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고깃집이 정말 많아서 새로운 식당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에 신촌부터 가기로 했는데, 그곳은 특히나 고기 굽는 집이 밀집해 있어 거의 1년간을 계속 드나들었다. 친구들과 무수한 밤을 삼겹살이나 갈매기살을 구우며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깃집의 분위기는 적당히 시끄럽고, 또 고기와 잘 어울리는 술을 마시며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 좋다. 또 고기가 타지 않도록 열심히 구워야 하기 때문에 동작도 활발해진다. 미국 사람들도 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지만 다 구워져 나오는 스테이크 집이 대부분이다. 고깃집도 한국처럼 많지도 않다. 삼겹살은 한국에 와서 처음 먹어봤다.

우리는 서울의 여러 식당을 비평하며 추천할 곳과 절대로 다시 가면 안 되는 곳을 정리했다. 식당 대부분은 고기의 맛과 분위기가 비슷했는데, 몇몇은 기억할 만한 경험을 남겼다. 나쁜 평을 한 곳은 고기가 질겼고, 직원도 무례했다. 반면에 훌륭했던 곳은 고기의 질도 좋았고 분위기도 특별했다.

좋은 고깃집에 가는 것은 내겐 정말 행복한 순간이다. 고기 맛을 통해 미각뿐 아니라 오감까지 자극이 된다. 구운 고기 냄새가 공중에 감돌고 초록색 상추와 빨간 쌈장, 하얀 마늘 등 여러 색깔의 반찬이 탁자 위에 펼쳐진다. 부산한 목소리와 술잔이 쨍그랑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뜨거운 석탄이 얼굴과 손을 따뜻하게 덥힌다.

고깃집 탐방은 이제 ‘도전’이라기보다 일상이 됐다. 원래 우리 계획은 서울에서 추천할 만한 고깃집을 모두 다 정리해 안내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서울에선 식당이 너무 빨리 바뀐다는 점이었다. 동네 골목도 너무 빨리 변해서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한국의 가게들은 마치 바다의 조수처럼 규칙적으로 열고 닫는 것을 반복한다. 안내서를 만들면 그때 우리가 추천한 맛집들 가운데 몇 개는 문을 닫을 가능성이 크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새로 생기는 곳은 보통 체인점이다.

세계 모든 대도시가 대부분 그렇지만, ‘모던’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는 서울은 더 그렇다. 서울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만큼 원래의 좋았던 점 또한 잃어버리는 것 같다. 동네마다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장점을 특화시켜야 할 것 같다. 일례로 문래동을 들 수 있다. 지금도 이곳은 볼거리가 딱히 많진 않은데, 최근엔 예술인들의 창작 공방과 아기자기한 카페가 생겨 ‘문래동 예술촌’이 만들어졌다. 파이프가게 같은 철물점에 둘러싸여 있던 곳이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서울 곳곳이 이런 모습으로 거듭난다면 인기 있는 동네가 늘어날 것이다.

서울의 전통 음식점 골목들도 소중한 장소다. 구석진 골목에 자리한 식당 의자들은 때론 많이 닳았고, 메뉴판도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것을 쓴다. 오랫동안 써서 휘어진 젓가락들도 자주 보인다. 이런 곳들이 특별한 이유는 손님들이 과거와 연결될 수 있어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서울에서 우리는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참 보람 있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서울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백화점과 각종 체인점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도시계획가들이 고려해 줬으면 한다.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장소를 발굴하고 또 발전시켜야 한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골목을 따라가면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한국식 고기나 생선을 먹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그런 곳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야말로 서울의 영혼이 깃든 장소가 아닐까.

벤 포니 미국 출신 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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