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 불가능한 한일… 북핵 위기감-초조함 공유
K팝 ‘빅뱅’으로 日TV 후끈… 심각한 보도와 온도차 크지만 그 풍요와 자유가 최고의 무기
북한이 2006년 첫 핵실험을 한 직후, 마침 프랑스 파리에 있었던 나는 에마뉘엘 토드 씨와 대담을 나눴다. 1970년대에 소련 붕괴를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학자다. 2002년에 낸 저서 ‘제국의 몰락’에선 미국의 쇠락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예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기 전에 붕괴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직 그런 징조는 없으니 지금의 그의 생각을 듣고 싶다. 어찌됐건 당시 대담에서 내가 놀랐던 건 그가 일본의 핵무장을 줄곧 권했던 점이다.
핵무기가 편재돼 있다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일이다.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이 사용된 것은 미국만 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소(美蘇) 냉전시대에는 서로 사용하지 않았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서로 핵을 갖고부터 평화의 테이블에 앉았다. 동아시아에서 북한은 논외로 하더라도 중국만이 핵보유국이어서는 안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본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유일한 피폭국인 일본에서는 국민 사이에 핵에 대한 거부 반응이 극히 심하다고 설명했으나 그는 그것을 극복하라고 했다. 일본의 큰 구조적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불안정한 거대 국가가 주변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보듯 걸핏하면 군사력에 호소하려 하고, 중국은 각종 사회 문제에 의한 국민 불만을 ‘반일(反日) 민족주의’를 내세워 밖으로 돌린다. 중국을 제어하고 미국으로부터 자립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핵을 가져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전쟁에 휘말려드는 것을 막는 길이라는 얘기였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뒤 샤를 드골 대통령이 핵 보유에 나섰다. 그는 프랑스가 미국과 영국의 핵에 의존하지 않은 이유는 몇 번이나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시아 침략의 기억이 주변국에 아직 남아 있는 일본이 핵을 갖게 되면 악영향은 헤아릴 수 없으며 반드시 군비 경쟁을 부를 것이다. 나는 ‘비핵(非核)’을 내걸고 핵군축을 호소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역할이라고 반론했지만 어찌됐건 이 대담은 정말로 자극적인 경험이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로 인해 최근 한국에서도 유력지에 핵무장 논의를 진지하게 주장하는 칼럼이 등장하는 등 핵보유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듯하다. 아무도 북한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자면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일본이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고농축 플루토늄을 축적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그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초조감도 강할 것이다.
그러나 그 칼럼 표현처럼 일본이 그런 입장 차이 덕에 ‘옆집의 불운(不運) 뒤에서 히죽 웃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큰 잠재력을 가졌을지라도 핵무장을 한다면 미국과의 대립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일미(日美)안보조약의 존립에도 문제가 생긴다. 현실의 선택지가 될 수 없고 미국 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좁은 한반도에서 그들이 동포를 향해 핵을 쓰겠느냐는 의문도 있다. 남북 공동으로 개발한 핵무기가 일본에 발사된다는 공상 소설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일도 있었다. 가장 큰 위협에 노출된 것은 자신들이라고 느끼는 일본이 ‘히죽 웃을’ 경황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일본과 한국이야말로 강한 위협감과 초조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마침 한일 관계의 호전을 상징하듯 케이팝의 대표 그룹인 빅뱅이 일본 TV방송에 오랜만에 등장했다. 4년 만에 일본에서 앨범을 발매했다고 한다. 신곡을 들려주고 그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일본의 연예인들과 화기애애하게 경쾌한 대화를 나누며 크게 분위기를 띄웠다.
양국 언론 보도가 북한 핵문제 일색인 가운데, 이는 큰 온도차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실은 이 같은 방송을 할 수 있는 양국 공통의 젊은이 문화야말로 긴 안목으로 보자면 북한의 위협에 대한 가장 좋은 대항력이 아닐까. 북한이 붕괴되거나 혹은 사회 변혁을 꾀하는 날이 온다면 그 원동력은 무력이 아니라 사회가 가진 풍요로움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젊은이들에게도 빨리 이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 싶다. 그들이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만세’를 외치는 마음 아픈 영상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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