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 이유가 전기화재를 줄이자는 건데, 이걸 못 해낸다면 공사를 없애 버려도 됩니다.” 법조인 출신인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61)은 ‘전기사업법 제74조’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긴다. 전기로 인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공사를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
그가 취임한 지 2년째, 국내 전기화재 발생건수는 2013년 8889건에서 지난해 7759건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화재사고 중 전기화재가 차지하는 비율도 21.7%에서 17.5%로 낮아졌다. 평균적으로 화재 한 건당 0.043명이 사망하고 447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다. 화재사고 1130건이 줄었다는 것은 49명을 살리고 505억 원을 아꼈다는 의미다.
이 사장은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화재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인 비결로 “기본에 충실하기”를 꼽았다. 전국 60개 사업소 현장직원들은 3년마다 한 번씩 각 가정에 전기안전 점검을 나간다. 이때 일부 직원은 ‘두꺼비집’으로 알려진 배전반만 대충 훑어보거나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고도 했다고 허위 보고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이 사장은 이런 일이 근절될 수 있도록 교육훈련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직원들은 전기화재를 줄일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집 밖에 설치돼 합선 우려가 있는 전기설비를 보면 비닐을 구해 와 덧씌웠다. 혼자 사는 노인가정에는 전기장판 등 난방기구에 이상이 없는지, 콘센트에 먼지가 쌓이진 않았는지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이 사장은 이런 변화에 자신감을 얻어 올해 전기화재가 전체 화재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15%대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사장은 경영혁신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국내 사업에만 매달리던 공사가 지난해 카타르 수전력청이 발주한 12억 원짜리 변전소 부분방전진단 사업을 수주한 것도 경영혁신의 성과였다. 카타르 정부가 발주한 변전설비 검사사업 입찰(80여억 원)에서는 독일 지멘스, 프랑스 알스톰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이 사장은 “사업을 수주하진 못했지만 직원들이 모든 입찰과정을 준비하면서 자신감과 노하우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몽골 등 전기안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국가에는 한국식 전기안전관리 시스템과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내 전기안전관리 체계를 반영해 전기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 베트남에선 한국에서 사용하는 계측기를 그대로 쓸 수 있을 정도”라며 “관련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전기안전관리 체계를 만들 계획이다. 전국의 모든 전기설비의 이력과 설계도를 빅데이터로 축적해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위험 징후가 발견되는 즉시 점검에 나서고, 장기적으로는 전기점검 방식을 현재의 합격·불합격 방식에서 등급제로 바꿔 나갈 방침이다. 설비등급이 높은 곳은 7년마다 한 번씩, 낮은 곳은 매년 점검하는 방식이다.
이 사장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수사했던 주무 검사였다. 안전에 대한 각오가 남다른 이유다. 이 사장은 “그때 안전 소홀이 얼마나 큰 사고를 불러오는지 뼈저리게 느꼈다”며 “전기안전에 대한 의식이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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