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 능숙해지면 다른 분야도 쉬워진다고 말했던가. 음악과 글은 같은 창작의 범주 안에 있지만 너무 다르다. 그래서 재작년 에세이집을 쓸 당시 나는 큰 혼란을 느꼈다. 이 증상을 고쳐 줄 글을 찾아 헤맸다.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글이 필요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그 와중에 발견했다.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전업 작가로 커리어를 쌓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몇십 년 전 일을 이렇게 생생하게 적을 수 있다니. 묘사는 생생했고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으며 재미있었다. 혈이 뚫리는 기분.
1920년대 파리는 문화적으로 어마어마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동경하는 바로 그 시대다. 청년 헤밍웨이는 당시 문학 대모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서 피카소와 만나고, 은행원이던 T S 엘리엇에게 시만 쓰게 하기 위해 친구들과 돈을 모으고,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낮술을 마셨다.
가난한 예술가 청년의 삶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지금도 있는 파리의 명소 ‘셰익스피어&컴퍼니’ 서점에 책을 빌리러 간 헤밍웨이는 보증금이 없어 쩔쩔맨다. 착한 점원이 그냥 빌려주겠다고 하자 뛸 듯이 기뻐한다. 남성의 ‘사이즈’로 고민하는 피츠제럴드를 루브르박물관에 데리고 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주요 부위를 보여주며 위로하는 부분에서는 사려 깊음도 엿볼 수 있다.
노년의 헤밍웨이는 파리에서의 시간을 투명하고 아름다운 시절로 추억하는 것 같다. 첫 번째 부인 해들리에 대해 얘기할 때 특히 그렇게 느껴졌다. 둘은 그림을 모으고 겨울에는 작은 오두막에서 스키를 타며 밤에는 사랑을 나누고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여름을 보낼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른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이 책에는 그가 그 사건에 대해 적은 짧은 글이 담겨 있다. 나는 그렇게 쓰리고 담담한 글을, 후회마저 삼켜버릴 정도의 깊은 슬픔과 회한을 본 적이 없다.
책의 후반부에 있는 ‘nada y pues nada’(‘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어, 아냐, 아무것도’라는 뜻의 스페인어)는 그가 자살하기 석 달 전에 적은 글이다. 생뚱맞게 스키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중략) 가슴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가슴 찢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슴이 있는 사람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마음이 아주 오래 쌓였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야’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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