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기자의 스포츠 한 장면]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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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때 키커(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골문 가운데로 슛을 날렸지만 골키퍼는 왼쪽으로 몸을 던지고 있다. 동아일보DB
페널티킥 때 키커(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골문 가운데로 슛을 날렸지만 골키퍼는 왼쪽으로 몸을 던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종석 기자
이종석 기자
“페널티킥 장면에서 골키퍼들은 상대 팀 선수가 어느 방향으로 슛을 할지 예측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예측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팀 골키퍼들에게는 좌우 어느 한쪽으로 미리 몸을 날리지 말고 킥을 할 때까지 골문 중앙에 그냥 서 있으라고 종종 말했다.” 27년(1986∼2013년) 동안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았던 알렉스 퍼거슨의 얘기다.

페널티킥 지점에서 골라인까지의 직선거리는 11m. 슈팅 최고 스피드가 시속 140km를 넘는 프로선수들도 정확성이 중요한 페널티킥 때는 대개 시속 100∼120km로 찬다. 이 정도 속도로 좌우 대각선 방향을 향해 슛을 해도 골라인을 지나는 데는 0.5초가 채 안 걸린다. 정상급 골키퍼라도 좌우로 날아오는 슛에 반응해 몸을 날리기까지는 0.5초가 더 걸린다. 퍼거슨이 골문 중앙에 서 있으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세계 각국의 프로 1부 리그와 단일 선수권대회에서 나왔던 286차례의 페널티킥 장면을 분석한 자료가 해외 경제심리학 저널에 실린 적이 있다. 좌우 폭 7.32m의 골문을 삼등분한 뒤 슈팅 방향을 세어 봤더니 왼쪽(골키퍼 기준) 92번(32.1%), 가운데 82번(28.7%), 오른쪽 112번(39.2%)이었다. 슛 방향에서는 세 곳의 비중에 큰 차이가 없다. 골키퍼들의 점프 방향은 어땠을까. 왼쪽이 141차례(49.3%), 오른쪽이 127차례(44.4%)였다. 골키퍼의 90% 이상이 좌우로 몸을 날렸다는 얘기다. 퍼거슨의 말처럼 중앙에 서 있었던 건 18차례(6.3%)뿐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퍼거슨의 말이 맞았다. 골키퍼들이 왼쪽으로 점프한 141차례 중 페널티킥 방어에 성공한 건 20번으로 방어율 14.2%였다. 127차례 몸을 날린 오른쪽에서는 16번밖에 막지 못해 방어율이 12.6%에 그쳤다. 수준급의 골키퍼들이 슛을 하기 위해 달려오는 상대 선수의 자세나 평소 슛 방향 등을 감안해 미리 판단했지만 막아낸 건 열 번 중 두 번도 안 됐다. 가운데 서 있었던 18번 중에서는 6번을 막아 가장 높은 33.3%의 방어율을 보였다. 중앙을 지키고 있는 동안 이쪽으로 날아온 슈팅은 10개였다. 이 가운데 6개를 막았으니 퍼거슨의 말대로 골키퍼들이 줄곧 중앙을 고수했다면 확률상 49개까지 막을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데도 왜 골키퍼들은 가운데를 버리고 열에 아홉이 양옆으로 몸을 던질까. 페널티킥 장면을 분석한 경제심리학자들은 경험 많은 골키퍼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데도 좌우로 점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페널티킥은 확률상 골키퍼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그래서 슛을 막지 못하는 것 자체는 별 흠이 안 된다. 하지만 골을 내주더라도 뭐라도 해보고 실점하는 쪽이 상대적으로 마음이 덜 불편하다고 느끼는 심리가 있다. 좌우로 몸을 날리면 슛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반대편으로 슛이 날아가 골을 먹어도 운이 없었던 것으로 여기면 된다. 대부분의 골키퍼가 이렇게 한다. 이에 비해 중앙에 가만히 서 있다가 골을 먹으면 성의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욕을 먹으면 어쩌나…. 이런 이유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실속 없는 행동(점프)을 하게 되고, 어떤 때는 뻔히 손해가 나는 줄 알면서도 뭔가 불안한 마음에 일단 저지르고 본다.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행동 편향’이다. 그러면서 퍼거슨과 마찬가지로 골키퍼에겐 가운데를 지키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고 결론을 냈다.

좌우로 점프한 골키퍼들의 선택을 전부 행동 편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슛 방향을 읽고 확신에 차 몸을 던진 골키퍼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등분한 골문에서 가운데를 지킨 비율이 열 번 중 한 번도 안 된다는 건 행동 편향이 아니고서는 따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꼭 골키퍼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행동 편향은 드문드문 볼 수 있다. 찝찝한 마음에, 어떤 때는 면피성으로, 우선은 하고 보자는…. 좋은 선택은 아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페널티킥#골키퍼#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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