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 여건도 녹록지 않다. 특히 전자, 디스플레이, 조선, 철강 등 일부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컸던 한국 경제는 이 산업들이 동반 부진에 빠지자 성장 활력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과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차세대 스타 산업을 서둘러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동아일보는 1일부터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현장을 직접 찾아가 미래 성장동력을 조망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2016년 연중기획 ‘한국경제, 새 성장판 열어라’의 3부다. 》
‘완벽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부터 바꾸자.’
경기 용인시 기흥구 삼성SDI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배터리 셀 개발라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구다. 이 라인은 삼성SDI가 새롭게 개발하거나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일부 스펙을 조정한 배터리 셀들을 가장 먼저 생산하는 곳이다. 제품당 수백∼수천 개의 샘플이 이곳에서 면밀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비로소 울산과 중국 시안(西安) 생산라인에서 대규모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김기호 삼성SDI 중대형배터리 개발팀장(전무)은 “2차전지 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안전성과 용량”이라며 “품질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완성차업체들이 제시한 스펙보다 내부 기준을 훨씬 높게 설정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 습도 및 먼지와의 전쟁
삼성SDI는 현재 총 20가지 정도의 제품을 시험 생산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2차전지 배터리는 외부에서 전류가 들어오면 양극 및 음극 물질 간 산화·환원 반응이 일어나 전기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각각 여러 물질을 혼합해 만드는 양극재와 음극재는 배터리 크기와 종류, 발주업체와 모델 등에 따라 모두 다르다.
70여 명이 2교대로 투입되는 1층 개발라인은 치밀하게 짜인 생산 스케줄에 따라 다양한 샘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양극재와 음극재의 혼합시간은 각각 8시간, 3시간 반으로 차이가 나 효율적 스케줄링은 개발기간 단축의 핵심 요소다. 신동석 삼성SDI 기술팀 차장은 “대부분의 경우 수작업으로 200개 이하의 배터리 셀을 조립한 뒤 먼저 테스트를 한다”며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 자동 생산라인을 돌려 수천 개의 샘플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2차전지 배터리의 가장 큰 적은 습도다. 불량률을 높일 뿐 아니라 안전성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탑승자 생명과 직결되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라면 0.00001%의 폭발 가능성도 허용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음극재 혼합실은 50% 이하, 양극재 혼합실은 3.6% 이하의 습도 기준이 철저히 지켜진다. 조립라인의 습도는 언제나 1.3% 이하로 유지된다. 새로 배치된 직원들이 한동안 원인 모를 피로를 호소하는 이유다.
개발라인은 또 대규모 생산라인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클린룸 체제로 운영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방진복과 방진모자, 방진장갑과 방진덧신을 착용하고도 에어워시를 거친 뒤에야 라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조남성 삼성SDI 사장은 2014년 12월 부임하자마자 개발 및 생산라인의 방진 의상 색깔을 모두 파란색에서 흰색으로 바꿨다. 만에 하나 색을 내는 물질이 떨어져 나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였다.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제품 테스트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안전성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다. 삼성SDI는 모든 2차전지 배터리에 대해 △압축 △관통 △낙하 △진동 △과충전 △단락 △고열 △열충격 등 8가지 테스트를 진행한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여기에 관성과 전복의 2가지 테스트가 추가돼 총 10개 단계를 거쳐야 한다.
○ 경영실적 나빠도 R&D비중 안줄여
삼성SDI는 올 1월 12∼25일(현지 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국제모터쇼에서 한 번 충전에 600km를 달릴 수 있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했다. 현재 2차전지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들이 한 번 충전에 150∼200km를 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능을 3, 4배 수준으로 높인 것이다. 삼성SDI는 이 배터리가 2020년 상용화되면 전기차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자동차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삼성SDI “2020년까지 3조 투자” 삼성SDI는 앞으로 한 번 충전에 700km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 부문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삼성SDI의 R&D 투자비(2014년부터는 옛 제일모직 소재 부문 실적 추가)는 2012년 3270억 원에서 2013년 4285억 원, 2014년 6205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중도 2012년 5.67%, 2013년 8.54%, 2014년 7.39%로 제조업체 중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 환경 악화로 실적이 나빴던 지난해에도 R&D에 5710억 원을 써 매출액 대비 비중(7.54%)은 전년보다 오히려 높았다.
삼성SDI는 특히 1월 25일 물적 분할한 케미칼 사업 부문을 상반기(1∼6월) 중 롯데케미칼에 넘기면서 받는 매각대금도 대부분 2차전지 배터리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조 사장은 “2020년까지 3조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반드시 글로벌 초일류로 성장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용인=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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