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교육부가 발표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 실태 조사 결과 부모·친인척의 신상을 자기소개서에 기재하고도 합격한 24명 중 3분의 2(16명)는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부모·친인척을 내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로스쿨 입시를 두고 ‘현대판 음서제’ 등의 비판이 나오는 것은 정성평가(주관적 판단에 따라 평가하는 방식)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 “아버지가 법무법인 대표” 적고 합격
교육부가 최근 3년간 로스쿨에 입학한 6000여 명의 자기소개서를 조사한 결과 모두 24명이 부모와 친인척의 신상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5명은 부모나 친인척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있게 기재했다. ‘아버지가 ○○시장’ ‘외삼촌이 ○○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아버지가 법무법인 ○○ 대표’ ‘아버지가 ○○공단 이사장’ ‘아버지가 ○○지방법원장’ 등의 표현이 자기소개서에 등장했다.
19명은 부모·친인척의 직위나 직장을 적었지만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운 경우였다. 한 지원자는 부모, 친인척 중 ‘대법관’을 지낸 사람이 있다고 적었지만 이름이나 재직 시기는 쓰지 않았고, 다른 지원자들도 ‘○○시의회 의원’ ‘○○청 공무원’ ‘검사장’ ‘○○법원 판사’ 등으로 기재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자기소개서에 부적절한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적발된 합격생 24명 중 부모·친인척이 법조인 또는 법학계 인사인 경우가 16명(67%)에 달했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문제가 된 사례를 살펴보면 로스쿨을 둘러싼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원우 서울대 로스쿨 원장은 “3년간 서울대 로스쿨 지원자 중 부모가 판사라고 밝힌 5명은 모두 떨어졌다”며 “전수조사 결과 부모가 고위 공직자, 법조인 등인 지원자의 합격률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낮았다”고 반박했다.
○ 본인 입학 취소 없이 학교만 징계
교육부는 지원자의 부정행위로 인정될 소지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학생에게 입학 취소 등 불이익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로스쿨 입학 전형 때 다양한 요소가 활용되고 여러 평가위원이 정성평가를 하기 때문에 자기소개서 기재 내용과 로스쿨 합격 간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진석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은 “법률 자문 결과 대학의 과실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문제점 등으로 합격 취소는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로스쿨에 대해 정도에 따라 기관 경고나 원장에게 주의를 주기로 했다. 입시 요강에 금지 규정을 둔 경북대 등 6개 로스쿨은 지원자가 이를 위반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지 규정을 두지 않았고, 부모 등의 신상을 쓴 학생을 합격시킨 로스쿨은 7곳이다. 유력 인사의 자녀가 합격하진 않았지만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은 ‘보호자의 근무처와 이름’을 기재하는 별도 항목을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대 한양대 등 일부 로스쿨은 자기소개서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었는데 교육부가 사후에 이를 징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의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앞으로 자기소개서에 부모·친인척의 신상을 적지 못하도록 규정을 명시하고, 이를 어기면 불합격 등 불이익 조치를 명문화할 방침이다. 로스쿨 대부분은 교육부의 방침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 비중 높아
로스쿨 입시가 사회적으로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정성평가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LEET 성적과 학점 같은 정량평가는 점수로 공정성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반면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성평가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반영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 명목상의 반영 비율은 공개돼 있지만 실질 반영 비율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로스쿨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미명으로 교육부가 로스쿨을 지나치게 방치해 왔다”며 “우리와 같은 대륙법 체계를 갖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국가가 로스쿨에 대해 강력하게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엇갈리는 반응
전국법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교육부 발표는 로스쿨 입시 관련 의혹을 가리기 위해 축소, 왜곡한 느낌이 든다”며 “감사원 감사나 국회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교육부가 조사 결과에서 나온 불공정 사례와 실명 등을 공개하지 않으면 정보 공개를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전국 25개 로스쿨 협의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교육부의 발표로 그동안 난무했던 악의적인 추측과 비방은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며 “로스쿨 입시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교육부와 협의해 이른 시일 안에 구체적인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법시험은 내년에 폐지될 예정이지만 지난해 말 법무부가 사시 폐지 유예 입장을 밝힌 이후 국회 법사위원회와 법조인양성제도자문위원회는 사시 존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번 조사에서 부정 입학 사례가 구체적으로 나왔다면 사시 존치론에 힘이 실렸을 것”이라며 “교육부가 사시를 폐지하기 위해 조사 결과를 두루뭉술하게 내놓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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