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첫방(‘쇼미더머니 시즌5’)이구먼. 이번 시즌 1차 예선엔 1만 명이나 모였대!” 에이전트7(임희윤 기자)의 호들갑이 에이전트5(김윤종 기자)의 심기를 건드렸다. ▽5=마이크에 대고 자잘하게 말하는 게 뭐 대단하다고. 저항, 자유, 에너지, 감정의 심연이 ‘쫑알쫑알’로 표현이 되나. 록의 저 가슴 뻥 뚫는 디스토션(기타 소리를 거칠게 왜곡 증폭하는 장치) 사운드! ▽7=‘쫑알쫑알’이라니. 노도처럼 몰아치는 리듬과 운문의 홍수를 아는가. 이제는 힙합의 시대다. 촌스럽게 무슨 록을 듣는다고. ▽5=록엔 영웅서사가 있지. 곰이 마늘만 먹듯 연주를 갈고닦는 과정에서 성찰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슈퍼파워를 얻게 되지. 거대한 사운드로 주류에 저항하는 내면…. 힙합은 피처링, 샘플링이 많잖아. 매끈한 기성품일 뿐. ▽7=록은 저항의 대상이 모호할 때가 많아. 랩엔 대상을 구체화해 현미경 보듯 조목조목 타격하는 느낌이 있지. 시인처럼 치열하게 운문을 지어 입으로 실어 나르는 수행이 장난은 아니지! 》
두 요원 사이에 발발한 ‘시빌 워(civil war·내전)’? ‘세대의 목소리’를 두고 오랫동안 경쟁해 왔던 록과 힙합의 오랜 신경전이기도 했다.(※각주: 이 대목에서 두 요원의 과거를 들춰야만 한다. 에이전트5는 한때 기타리스트를 꿈꿨다. 에이전트7은 래퍼 경연대회 엠넷 ‘쇼미더머니2’ 참가자 출신).
○ 록 소년 vs 힙합보이
‘록이냐, 힙합이냐’ 팽팽한 의견 대립으로 멱살 잡기 직전까지 간 두 요원. 불현듯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외계의 음모란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싸우지 말고 사람들부터 만나보자.” 힙합 듀오 가리온의 MC메타부터 만났다.
“1990년대 전만 해도 가요, 포크, 록 말곤 젊은이들이 국내 대중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장르음악이 거의 없었어요. 그 이후 힙합의 미디어 노출이 늘면서 자연스레 매력에 빠진 거죠. 저도 한때 레드제플린 팬이었죠.”
조용필, 신승훈조차 자신의 앨범에 힙합 요소를 넣고 있으니 음, 1차적으로 보면 힙합의 승리.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시즌5까지 나온 ‘쇼미더머니’(엠넷)와 흥행 부진으로 사라진 록 경연대회 ‘TOP밴드’(KBS). ‘쇼미더머니’ 연출을 총괄해온 엠넷 고익조 팀장은 고교생 랩 배틀 프로그램 ‘고등 래퍼’를 기획 중이었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을 표출하는 방식은 유행에 따라 ‘왔다갔다’해 왔죠. 지금은 힙합이죠. 록? 요즘 10대들은 연주하기 힘들어해요. 힙합은 컴퓨터와 펜만 있으면 되죠. 만들어진 비트를 인터넷에서 찾아 가사만 얹어도 됩니다. 쉬운 걸 원하는 시대에 맞죠.” 반면 ‘TOP밴드’ 시즌1∼3을 연출한 KBS 김광필 PD는 담담했다.
“밴드를 부활시키려 노력했는데…. 젊은 세대의 정서를 록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메시지 측면에서도 거대 담론보다 랩의 세밀한 주장에 요즘 사람들이 더 공감하고 있죠. 20대 중 록 듣는 사람은 클래식, 재즈처럼 접근해요. 소수의 취향이 된 거죠.”
○ 교실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진짜 10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친김에 서울시내 중고교를 돌아다녔다.
“교실에서 록 듣는 애들은 드물어요. 아이들이 힙합 디스(Diss·비난) 가사를 중얼거릴 뿐이죠. 근데 그 속에 거창한 저항정신은 없어요. 다들 너무 잘 알거든요. 저항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팍팍하다는 것을…. 문화로 저항하기보다는 그냥 남학생들은 담배 피우고 여학생들은 화장합니다.”(서울 성북구 A중학교 교사 신모 씨·35)
고교생 10여 명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저항이란 단어와 힙합, 록은 관계가 적었다.
“록은 너무 과장돼 코미디 같아요. 대놓고 비속어 쓰고 욕하는 힙합이 공감이 가요. 근데 록, 힙합, 시대정신 뭐 이런 거보다는 당장 먹고살기 어렵고 취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1순위예요.”(서라벌고 1학년 김모 군) “저항이나 감정을 표출하려면 문화를 통하기보다는 직접 해버려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글을 쓰고 댓글 달면서 현실을 비판하고, 또래와 의견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요.”(고교 2학년 박모 군)
비틀스, 레드제플린, 메탈리카, 서태지, 너바나, 에미넘…. 1개 장르 혹은 1명의 뮤지션을 ‘세대의 메시아’로 탐독하는 문화. 기타를 멘 친구 혹은 비트에 가사를 얹는 친구에게 동경을 보내던 분위기. 모두 사라져 간다. 패션 좋고, 노래와 춤을 잘하는 ‘아이돌 스타’ 이미지 학생이 10대 문화리더가 된 현실에서 ‘록 vs 힙합’은 이미 구시대 버전. 답답함에 ‘명예 에이전트’ 김헌식 문화평론가를 찾았다.
“록이나 힙합으로 풀어내기에는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에요. 그렇다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진 않잖아요. 저항 문화는 사라지고 ‘디스 문화’만 남았죠.”
두 요원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슈트를 챙겨 입은 뒤 홍익대 앞으로 향했다.(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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