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과 오태석, 우리 둘은 원로 연극인으로 불려선 안돼. 세계적인 연극인이라 불러줘야지. 우리야말로 한류의 조상이지.(웃음) 1980, 90년대 유럽과 일본 등에서 한국 연극을 얼마나 많이 알렸다고….”(원로연출가 김정옥·84)
한국 연극계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김정옥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76)는 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등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원로연극제에 참여하고 있다.
연극제에서 김정옥은 1997년 초연한 모노드라마 ‘그 여자 억척 어멈’(17일까지), 오태석은 1974년 초연한 연극 ‘태’(12일까지)를 공연 중이다. ‘그 여자…’ 초연 당시 박정자가 열연했던 배수련 역에는 배해선이 캐스팅됐고, ‘태’에는 원로배우 오현경과 성지루 손병호 등이 출연 중이다.
최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두 노장을 만났다. 이들의 연출 인생을 합치면 105년(김정옥 55년, 오태석 50년). 이들은 “‘원로’ 대신 ‘영원한 현역’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원로라는 말 자체가 따분해. 난 지난해까지 경기 광주시에서 모노연극제를 열었어. 오태석은 극단 목화 작품을 매년 올리고 있고…. 연극엔 정년이 없어. 연극 정신만 살아 있다면 말이지….”(김정옥)
각각 100편 넘는 작품을 연출해 온 이들은 숱한 배우들을 길러냈다. 박정자 윤소정 김혜자 최불암, 고 김무생 등이 김정옥이 대표를 지낸 극단 ‘자유’를 거쳤다. 손병호 성지루 박희순 박영규 장영남 정은표 등은 오태석이 이끄는 극단 목화 출신이다.
이들에게 ‘좋은 배우’에 대해 물었다. 오태석은 연극과 TV 배우의 본적(本籍)이 서로 다르다고 했다. “드라마는 컷마다 끊어서 촬영하지만 연극은 2, 3시간 내내 한 템포로 가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수야. 적게는 100명, 많게는 800명의 관객을 배우가 쥐락펴락해야 하는데 6할은 배우의 몫이고, 4할은 관객이 상황을 상상하며 즐길 수 있게 여백을 줘야지.”(오태석)
좋은 연기는 연습량에 비례한다는 게 김정옥의 지론이었다. “1964년 ‘도둑들의 무도회’ 연습 기간엔 주인공인 김혜자와 함현진의 연기가 많이 부족했어. 다들 ‘쟤네 때문에 망했다’고 수군덕거렸지. 둘이 이를 악물고 연습하더라고. 막상 막이 오르니 선배들을 제치고 이 둘이 가장 연기를 잘했어.”
영원한 현역임을 자처하는 두 사람은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연극 자체가 허구의 장르야. 아무것도 없지. 그 허구를 인정해야 해. 허구를 찾는데 무슨 돈을 바라. 돈보다는 연극에 대한 열정을 좇았으면 좋겠어.”(오태석) “작품을 올렸는데 관객이 들지 않는다면 연극을 올리는 의미가 없지. 늘 새로운 관객이 유입되도록 실험적인 공연 예술을 추구했으면 해.”(김정옥)
김정옥은 10월 프랑스에서 열릴 ‘꼭두’ 전시 준비에 한창이다. 또 경기 광주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얼굴 박물관’ 안에 ‘뮤지엄 씨어터’도 만들 계획이다. 오태석은 극단 목화를 통해 계속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오태석은 연극이 허구라고 했지만 나는 세상사가 다 연극 같아. 특히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나한테 연출을 받으면 더 세련되고 드라마틱하게 싸울 텐데’라는 생각도 들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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