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국민들, 맨손으로 키운 조선업 존재 벌써 잊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0일 03시 00분


한국 ‘산업혁명 디자이너’ 오원철 前 대통령경제수석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제2수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포병 장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숫자와 기술에 대한 감각과 지도를 읽거나 지형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회고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제2수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포병 장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숫자와 기술에 대한 감각과 지도를 읽거나 지형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회고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박용 기자
박용 기자
《 ‘한강의 기적’이 흔들리고 있다. 조선과 해운업은 부실이 커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랐다. ‘산업의 피’인 철강업은 세계 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으로 신음하고 있다. 중동의 모래바람과 근로자의 땀을 먹고 자란 건설업은 해외 시장에서 우리끼리 출혈 경쟁으로
깊은 멍이 들었다. 한국의 허리 산업인 자동차, 반도체 전자업종도 급격한 기술 변화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바람 앞에 촛불 신세다. “조선업이 다 망해 가는데, 정부고, 기업이고, 언론이고 다들 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야. 반기문(유엔 사무총장)이 어떻고, 정치는 어떻다고 잘도 얘기하더군. 누가 책임져야 돼?” 1960, 70년대 한국 경제 재건과 중화학공업의 기틀을 다진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제2수석비서관(88)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톤이 높아질 땐 황해도 사투리도 배어 나왔다. 인터뷰 내내 호통이 죽비처럼 내리쳤다. 그를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조선업계, 감기 방치하다 폐렴 걸려”

―조선업의 위기를 경고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정부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다들 아무것도 안 한 거야. 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사람들, 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 조선업이 처음부터 잘됐던 건 아니라고.”

―1970년대 조선업을 육성할 때는 어땠나.

“처음엔 안 되는 사업이었지. 제대로 된 배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방향도 못 잡을 때였어. 조선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해서 밀고 간 거야. 배에 도료를 칠할 때 녹을 긁어내는 모래가 부족하다고 해서 청와대가 나서서 구해준 적도 있었어.”

―청와대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썼나.


“모래뿐인가. 배 만들 사람이 없어 여성들까지 데려다가 용접공으로 썼어. 여성들이 손재주가 좋아 어려운 도면을 보고 척척 용접을 하는데, 깨끗하고 실수가 없었지. 그 뒤로 여성 용접공을 많이 썼어. 그렇게 만든 조선업이야. 그걸 망가뜨린 게 누군지 따져 봤어?”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


“밑지는 쪽이 조선업계 아닌가. 감기 걸렸을 때 치료 안 하고 있다가 폐렴까지 걸려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데, 죽을 것 같으니 무작정 돈만 달란 얘긴가. 목적과 대안을 내놓고 매달려야지.”

―구조조정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업계가 먼저 살 궁리를 찾아서 계획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고, 국민들에게 알렸어야지. ‘대비를 못해 여기까지 왔는데 잘못했다. 다시 살아나 국가에 폐 안 끼치고 봉사하겠다’라고 빌어야 한단 말이야. 가장 잘못한 건 조선업계야. 그걸 알고도 단체행동을 하는 종업원들도 문제가 있어. 알고도 당하는 정부는 더 나쁘고. 국민들이 조선업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거지. 누군가 ‘정신 차리시오’라고 몇 마디는 했어야 하는데….”

―국가적 경보 체제가 고장 났다는 뜻인가.


“업계는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정부에서 조선업계가 이렇게 될 것이니 대비하는 사람도 없었어. 그러면 조선업을 하면 안 되는 거지.”

―조선업계에만 맡길 일인가.

“대통령이 벌써 나섰어야지. 계획 세우는 사람도, 걱정하는 사람도,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구조조정이) 공중에 떠 있다는 말을 듣는 거 아닌가. 세계적으로 어떤 분위기이고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쳐 어떻게 힘들어졌는지 따져보고, 하나하나 해결해야 할 거 아니야. 다 망한 다음에 따질 거야?”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겠나.


“사전에 조치를 했겠지. 나 같았으면 당장 비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을 거야. 그땐 대통령이 직접 나섰어. 잘못하면 말 그대로 끝이야. 잘하면 칭찬받지만….”

1969년 정부 보증을 받은 외자 도입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다. 당시도 산업은행이 떠맡은 부실기업만 23개나 됐다.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 내에 부실기업정리반이 설치됐고, 정부는 석 달간 합병 등을 통해 30개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시장 자율? 정부가 책임 피하려는 말”

―지금은 시장 자율이 강조된다.


“시장 자율? 정부에서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말 아닌가? 공업을 발전시킬 책임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있는 거라고. 조선업은 조선업계가 알아서 해라? 그건 아니지. 조선업계가 군함도 만들잖아. 다 이런 시스템에서 유지되는 거라고.”

―국가 차원의 장기 계획의 부재가 위기를 불렀다는 건가.

“미국에 가려면 먼저 목표를 세우고 배를 타고 갈지, 비행기를 타고 갈지 계획에 넣어야지. 앞뒤 모르는 경제 정책은 없어. 부산 가려는 사람이 북쪽으로 가면 안 되는 거지.”

―현 정부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3년 갖고 되겠어? 50년 계획은 세워 놓아야지. 아무것도 없이 가다간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어.”

―누가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인가.

“정부든, 민간이든, 누구든 좋아. 정부에서 유도하면 더 좋고.”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데 어떻게 50년 앞을 내다보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거야. 50년 뒤를 어떻게 알겠어. 5년 단위로 쪼개서 열 개로 보는 거야. 큰 방향을 세워놓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고쳐 가면 돼. 지금 있는 사람들이 죽고, 다음에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 것까지 내다봐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자면 정책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면 예전 것이 다 없어진다.


“그런 나라는 발전하지 못해. 우린 농사만 지어서는 못 먹고 사니까 공업을 육성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운 거야. 기술이 없으니 먼저 간단한 수공업부터 시작했고. 생산 설비를 사올 달러가 없어 어떻게 하면 수출을 많이 할까 고민하다가 어떤 공업을 해야 얼마나 수출할 수 있겠다는 계획이 나왔지.”

그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산업혁명을 4단계로 분류한다. 1단계 2억 달러, 2단계 10억 달러, 3단계 100억 달러, 4단계 1000억 달러 수출 목표를 정해놓고 필요한 산업을 육성했다는 것이다.

“계획 없이 가다간 훅 나가떨어질 것”

―국가적 장기 계획에 맞게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뜻인가.


“수출을 하려면 기능공이 꼭 필요한데, 그땐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어. 대통령 지시로 학교를 몇 개 짓고, 시험 제도도 만들어 기능공을 키웠지. 그때 만든 게 금오공고야. 그래서 국제기능올림픽 1등도 나온 거지.”

그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제목이 적힌 낡은 책자를 꺼내 보였다. 1970년대 작성된 기능공 5만 명 인력 양성 계획이었다. 첫 장에는 ‘원본 소장자 오원철’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1970년대는 기술자를 어떻게 대우했나.

“기능공들이 외국에서 큰 상을 타오면 청와대에서 훈장을 주고 도심 퍼레이드까지 해줬지. 그 사람들, 상 받고 펑펑 울더라고. 그 기쁨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일했던 것 아닌가. 1970년대 밤중에도 불을 켜고 일하는 한국 근로자들을 보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일감 더 주라고 해서 사업을 더 따오고 그랬다고. 꼭 대학 나온 사람만 존경받아야 하나. 기능공들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라고 긍지를 줘야 해. 공고 나오더라도 차관, 장관이 될 수 있어야지.”

―테크노크라트 역할도 강조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는데, 30여 명 중에 공고나 공대 출신이 딱 한 명이 있더군. 전부 행정 하는 사람들만 뽑아놓고 기술을 모르니까 나 같은 사람 불러놓고 강의를 시키는 거 아니냐고 화를 버럭 냈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어떻게 일했나.

“참모는 대통령이 요구하는 답을 늘 갖고 있어야 해. 대통령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까지 만들어 ‘각하, 이 계획대로 하면 일본과 동등하게 될 수 있습니다’라고 브리핑하고 ‘OK’를 받았지. 일본으로 돼지를 수출하려고 잔뜩 모아놨는데, 돼지 콜레라로 수입이 금지된 적이 있었어. 대통령이 회의에서 대책을 요구했지. 고기는 독일처럼 햄과 소시지를, 가죽은 군화를 만들자고 했어. 햄과 소시지가 그때 처음 국내에 등장했지. 돼지껍데기 구이가 인기를 끌어 군화는 못 만들었지만.(웃음) 박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는데, 터널 내부에 붙은 시커먼 매연을 없앨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시더군. 매끈한 타일을 붙이자는 대책을 내놨지. 북한의 삐라에 대응하기 위해 풍선에 삐라를 매달아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냈지. 그거 특허까지 냈다고.”

오 전 수석은 ‘당시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머리 좋다는 칭찬 한마디 들으려고 늘 생각하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관계자들에겐 ‘기업을 어떻게 하면 살릴까, 지금이 어떤 때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만을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수석은▼

△1928년 황해도 풍천 출생
△1945년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 공대 전신) 화학공업과 입학
△1951년 서울대 화학공업과 졸업
△1957년 공군 소령으로 전역
△1957년 시발자동차회사 공장장
△1961∼1964년 상공부 화학과·경공업과·규격과 과장
△1964∼1970년 상공부 공업 제1국 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1971∼1979년 대통령경제제2수석비서관
△1974∼1979년 중화학공업기획단 단장
△1992∼1997년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
△1998∼현재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 상임고문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오원철#전 대통령경제제2수석#산업혁명 디자이너#조선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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