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78)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김 고문 부부와 시인 마종기 씨 부부, 가수 장사익 씨 등과 함께한 장면이었다. 그는 자신과 아내만 나오도록 편집해 자녀들에게 단체 메시지로 보내줬다고 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새로운 것에 대한 김 고문의 호기심은 왕성하다. 최근 낸 산문집 ‘기억의 깊이’(문학과지성사)에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성찰이 풍성하다. 그 성찰은 물론 기자로, 평론가로, 번역가로, 편집자로 산 그의 활자에 대한 고민이다.
22일 만난 그는 “문자로 평생을 보냈다”고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앞으로는 아날로그식 문자 활동은 비관적으로 보인다”고 미래를 내다봤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문학은 모든 지적인 예술 형식의 중심이었지만 이제 변방으로 몰리고 있다. 작가도 단독의 창작자라기보다는 종합예술의 스태프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때 21세기에 들어서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그만둔 게 2000년이기도 하고. 허허.”
그러나 그는 “나도 모르게 21세기 디지털 문명에 적응해 가는 걸 느낀다”며 빙그레 웃었다. 대학 2학년 손녀와 ‘카톡’으로 연락을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변화(變化)라는 단어의 한자 중 ‘변(變)’은 외부 세계가 바뀌는 것을, ‘화(化)’는 그에 대한 심정적인 적응을 뜻한다. 어느덧 세상에 맞춰 가는 걸 확인하고 그 단어의 뜻을 실감한다.” 디지털 시대의 문자와 문학에 대해 마냥 안타까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전통의 책에서 버추얼리얼리티(VR)의 책으로 가는 문명의 변화를 직시하고 출판 편집인으로서의 창조적 역할을 감당한다면 미래가 어둡지는 않다고도 강조했다.
다양했던 활동 중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김 고문에게 물었다.
“1970년 ‘문학과지성’의 계간 편집동인으로 참여해 2000년까지 일했으니 내 생의 3분의 1을 그 이름을 짊어졌다.” 10대 때 장래에 대해 꿈꾼 것도 ‘무엇이 되고 싶다보다는 어떻게 살고 싶다’였다는 그의 말이 이어졌다. “가까운 친구들과 동아리로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 꿈이 이뤄진 것 같다.” 김현 김치수 김주연 또래 평론가들과 함께 계간지를 꾸리고 문학 책을 만들어 온 그는 지금도 매주 화요일이면 시인 황동규 정현종 씨, 소설가 김원일 씨 등 동년배 문인들과 만나 바둑을 두고 담소를 나눈다.
그는 최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씨가 소설가로 등단할 때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소설가 신경숙 씨의 출세작 ‘풍금이 있던 자리’에 주목해 책으로 냈고, 문단의 든든한 허리가 된 소설가 김중혁 씨가 등단할 때도 큰 관심을 보였다. 최근에는 ‘후장사실주의자’로 유명한 정지돈 씨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김 고문은 “문학이 갖고 있는 서사성, 기존의 상상력이 뒤엎어졌더라. (문학의) 존재론적 생태가 변한 게 아닌가 한다”며 “21세기의 문학 쓰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꿰뚫었다.
노년의 나날은 어떨까? 그는 ‘완전한 자유인의 시간’이라면서 오전엔 신문을 읽고 오후에 책을 보고 저녁엔 야구 경기를 본다. 두산 베어스의 팬인 그는 경기가 없는 월요일은 심심하다며 싱긋 웃음 지었다.
인터뷰 말미에 김 고문은 “어떤 전통은 완고하게 지키면서 어떤 건 까맣게 잊더라”고 했다. “좋은 원두가 그렇게 많다는데 커피는 인스턴트커피가 제일 맛나더라. 그런데 펜으로 원고지에 글 쓰는 건, (그 습관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못하겠더라.” 그의 얘기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아날로그의 증언’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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