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영화 ‘터널’을 봤다. 부실공사로 무너진 터널에 갇힌 주인공과 그를 구하려는 구조대원 및 가족의 사투를 그린 재난영화이다. 군데군데 익살스러운 설정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찍어가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2시간 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잊고 있던 기억에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 젊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세월호를 연상한다지만 필자는 영화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떠올랐다. 1995년 6월 29일 사고 당시 인근에 있던 필자는 생생하게 현장을 목격했다. 여름이라 해가 있었지만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연기와 시멘트 먼지가 자욱했다. 무너진 건물 파편이 사방을 뒤덮었고, 파편에 부서진 자동차 수십 대가 곳곳에 멈춰 있었다. 명물로 여겨졌던 분홍색 5층 건물은 오간 데 없고, 폭삭 내려앉은 건물 잔해와 흉물스러운 느낌의 기둥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파악하던 중 3층 높이의 건물 잔해에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가 살려달라는 듯 손수건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저기 있다”며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10초 남짓 지나 구조대원의 손을 잡아끌고 다시 그녀를 찾았지만 사라진 뒤였다.
이 사고로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이라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 조사 결과 기둥에 들어갈 철근 수를 줄여 시공하는 등 건전한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도 많이 자행됐다. 특히 안전을 무시한 건물 리모델링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4층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불법 확장했고, 5층은 용도까지 불법 변경했다. 지하에 두려던 건물 냉각탑 4개도 옥상으로 옮겨졌다. 이로 인해 기둥이 버텨야 할 하중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고, 건물은 주저앉고 말았다.
사고 이후 1990년 전후로 지어진 전국의 대형 건축물들의 안전이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아파트들은 전 국민적 관심사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 채 건설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면서 △불량 건설자재 사용 △비숙련 건설인력 투입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감독 소홀 등의 문제가 집약됐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실 자재 사용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1988년 후반부터 건축 물량이 폭주하면서 시멘트 철근 모래 콘크리트 등 건축자재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시멘트의 경우 당시 40kg 한 포대에 2000원 하던 것이 5000∼6000원으로 폭등했다. 모래 철근 레미콘 등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에서 값싼 자재들이 대량 수입됐고, 제대로 씻지 않은 바닷모래가 사용됐다. 국민들의 우려가 거세지자 정부는 전문가들로 조직을 꾸려 구조안전 점검을 실시했고,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으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최근 정부가 아파트 수직증축 리모델링 때 내력벽(耐力壁) 철거 허용 방안을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부 1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가 내력벽 철거 허용 방침을 세우고 올해 초 관련 법령 개정안까지 입법예고했다가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력벽은 건물의 지붕이나 위층 구조물의 무게(하중)를 견디는 벽이다. 건물 안전에 기둥만큼 중요한 구조체이다. 전문가들마다 내력벽 철거에 따른 안전성 여부에 대해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그렇다면 시간을 충분히 갖고 꼼꼼히 따져보는 게 맞다. 안전은 0.001%의 의심도 없어지기 전까진 양보해선 안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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