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이 아마 5단이라며? 에이, 그럼 상대가 되나. 그냥 사진 찍기 위해 몇 수만 둡시다.”
7급을 자처한 이중명 에머슨퍼시픽 회장(73)과 ‘인터뷰 증거용(?)’으로 6점 접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진기자가 촬영을 마친 뒤 인사말을 남기고 회장 집무실을 떠난 후에도 바둑은 끝나지 않았다. 초반부터 기 싸움이 벌어지면서 서로 ‘이제 그만 두자’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것.
이 회장의 바둑은 행마의 틀이 제대로 잡혀 있어 7급은 훨씬 뛰어넘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딱 한 번 큰 손해를 보는 바람에 결국 백을 잡은 기자의 승리로 끝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더 신경 써서 둘걸….”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승부는 역시 승부였다.
에머슨퍼시픽은 경기 가평군 아난티클럽과 경남 남해 힐튼 골프&스파 리조트 등 골프장 운영과 고급 리조트 사업을 주로 하는 중견 업체. 이 회장은 주로 경영난에 빠진 골프장을 인수해 명품 골프장으로 변신시키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였다. 그는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할 때 끈기 있게 도전했고, 그러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그 역시 사업 부도로 ‘폐인’ 수준까지 떨어졌으나 특유의 끈기로 재기했고, 그 와중에 하나님을 맞은 것이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 그는 지금은 사업을 사실상 아들에게 물려주고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살고 있다.
“바둑도 나 혼자 독식하려고 하면 꼭 탈이 나죠. 승부니까 남을 배려만 할 수는 없지만 남의 몫도 인정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사업이나 인생도 나눌 줄 알아야죠. 당장은 나누는 게 손해 같아도 긴 안목으로 보면 그게 이득이에요.”
예를 들어 골프장 직원 대우를 다른 업체보다 잘해 주면 수익은 적어져도 ‘명품’ 골프장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2005년 남해에 힐튼 리조트를 지으면서 인연을 맺게 된 해성중고교를 지원해 지금은 학생 90%가 서울로 진학하는 명문고가 됐다.
또 소년원 출신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단체인 한국소년보호협회 회장으로 경기 화성시에 ‘영이글스 스튜디오’라는 직업교육시설을 만들었다. 2012년 회장을 맡은 뒤 이른바 ‘문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직접 소년원에 들어가 1주일간 함께 생활했다.
“그 아이들은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대접받아 본 적이 없어요. 대접해 주고 일자리를 찾아 주면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 싶어 법무부와 기획재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해 직업훈련시설을 지었죠.”
이곳은 2인 1실 기숙사에 축구 농구 탁구 당구 헬스장을 구비해 1급 연수원과 차이가 없을 정도. 자동차 정비, 정보기술(IT), 바리스타, 캐디, 골프장 코스 관리 등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초등학교 때 외할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운 그는 자칭 7급과는 달리 4, 5급 실력은 충분했다. 골프도 90대 초반.
“골프나 바둑 같은 취미는 내가 즐길 정도만 하면 좋아요. 내가 좀 못하면 상대가 좋아하잖아(웃음). 바둑은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하니 끝까지 놓지 않을 겁니다.” ●나의 한 수○
끈기 있게 덤벼라
처음부터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면 몰라도 일단 하기로 했으면 끈기를 갖고 꾸준히 도전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옆에서 ‘그게 되겠어’라고 할 때 마음이 약해져 포기하면 안 된다. 내 판단으로 포기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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