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업체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데 정작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보이질 않는다.”
한진해운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5월 초 이후 쏟아져 나온 질타였다. 하지만 해수부의 목소리를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1일 확정되고, 이로 인해 국내외 해운물류 시장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호소하는 아우성이 잇따른 뒤에야 해수부는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가 4일 범정부 차원의 대응팀을 구성하고 해수부를 컨트롤타워로 격상시킨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수부가 구조조정 논의 과정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해수부는 당초 한진해운 퇴출에 반대해 왔고, 국적 선사를 2곳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금융위원회나 KDB산업은행 등 금융권의 논리에 따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해수부가 한진해운의 퇴출 반대 의사를 관철할 의지나 능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해수부 홈페이지에 올려진 2016년 업무계획을 보면 해운시장 전망에 대해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선박 공급 과잉 지속 등으로 본격적인 해운시장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 선박 대형화와 공급 과잉, 운임 약세 등으로 인한 경영 여건 악화와 일부 대형 선사들의 인수합병에 따라 컨테이너 시장 개편 가속화 예상’이라고 정리했다. 연초부터 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적절한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 이를 어떤 식으로 타개할지 구체적인 답은 보이지 않는다. ‘해운산업의 위기관리 능력 제고를 위해 해운선사별 경영 동향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해운시장 조기경보망을 구축하여 위기 징후를 사전에 파악·대응한다. 또 가스공사 발전사 등 대형 화주와 장기운송계약 체결을 확대하여 해운시장 안정화와 국내 선사의 안정적 경영을 지원한다’고만 돼 있을 뿐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두 개의 컨테이너 해운사를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없었다.
해수부뿐만 아니다. 최근 정부 부처들의 행태를 보면 무능하고 무기력해 보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들끓던 민심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한목소리로 요구하는데도 “4시간만 쓰면 문제가 없다”며 버티던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하루 만에 입장을 180도 바꾸는 촌극을 연출했다. 연초 미세먼지로 온 국민이 고통에 시달렸지만 환경부는 뒷북 대책을 내놓으며 고등어와 삼겹살을 주범인 양 거론해 여론의 비난을 자초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택지 공급 축소 방침은 전통적 비수기인 여름철에 집값을 들썩이게 하는 부작용만 불러왔다. 이 밖에도 정부가 ‘헛다리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온 사례는 많다.
한국 경제는 현재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 국제 경기 불안 등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정의 조타수’로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 수준으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국가경쟁력은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조사 대상 61개국 중 2007년 세계 11위에서 2015년 26위, 2016년에는 29위로 추락했다. 이런 식이라면 선진국 문턱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눌러앉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에겐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을 이끌어낸 성공 DNA가 있다. 지금 이를 일깨우길 간절히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