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이젠 연예인이라 부르는 것도 너무 어색하네요. 방송 안 한 지도 오래됐고, 10년째 목사로 활동했으니…. 이런 인터뷰도 쑥스럽습니다, 허허.”
‘밥풀때기’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김정식(57). “이젠 알아보는 이도 별로 없다”는 말마따나 젊은 세대에겐 생경한 이름이다. 허나 중장년층이라면 그가 출연했던 ‘도시의 천사들’ ‘동작 그만’ 개그 코너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1981년 KBS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그는 임하룡과 콤비로 1990년대까지 콩트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세월 저편으로 잊혀져 갔던 그가 최근 또 한 번 주목받는 일이 생겼다. 지난달 패션쇼핑몰 ‘엔터식스’에서 주최했던 ‘제1회 재치 있는 불효(不孝) 사연 공모전’ 수상자에 포함된 것. 치매에 걸려 고생하다 2010년 작고한 모친의 사연을 담은 글 ‘어머님의 절친, 뚫어 뻥 여사’가 금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 그는 목회에 전념해 현재 경기 파주시에 있는 ‘예온교회’ 담임목사로 변해 있었다. 최근 전화로 그를 인터뷰했다.
―이젠 정말 ‘목사님’이란 호칭이 더 어울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하. 누가 ‘김 목사’ 해야 돌아보지, 개그맨 그러면 긴가민가해요. 2007년 목사가 됐으니 시간 빠르네요. 장애인 사역을 한 지 20년 가까이 됐고요. 일부러 방송도 인터뷰를 자제했는데, 괜히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더 민망해졌네요.”
―굳이 대외활동을 피한 이유가 있습니까.
“선입견을 벗고 싶었습니다. 전 정말 장애인을 사랑하고, 목회 일이 행복해서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직업을 가졌던 탓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도 있어요. 물론 제가 감당할 몫이지만 ‘과거를 지우는 작업’이 녹록지 않습디다. 전문가가 아니란 지적에 지난해 서울기독교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도 취득했어요.”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정이 갔어요. 초등학교 3학년 짝이 소아마비였는데 참 친했습니다. 코미디언 때도 아무리 바빠도 장애인 팬은 그냥 못 지나쳤어요. 장애인을 위한 교회인 예온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도 그냥 그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피붙이였던 것처럼…. 실은 제가 최근 사재를 털어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교육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공모 글을 보니 어머님이 치매로 고생했다는데요.
“네, 병세가 심하셨죠. 빗자루랑 ‘뚫어 뻥’을 친구라며 이불 깔고 눕혀 놓으실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엔 속상해서 눈물로 애원한 적도 많았습니다. 근데 한번은 큰 결심하고 빗자루한테 ‘아이고, 이모님 오셨어요’ 하고 절을 했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엄청 기뻐하며 그날 밤 잘 주무시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기왕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맘이라도 편하게 해드리자. 그렇게 생활하니 웃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나중에 제 품에서 정말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떠나셨어요.”
―효자셨네요.
“에휴, 아닙니다. 막내가 연예인 한다고 맘고생 많이 시켜 드렸어요. 그냥…. 말년에 치매건 아니건 어머님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평생 홀로 자식들 수발하셨는데 그 정도도 못하나 싶어서요. 그렇게 맞춰 드리면 어머니와 뭔가 통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한테 마음을 여시는 느낌이랄까. 제가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맘도 그와 비슷한 건가요.
“장애인 부모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소원이 똑같습니다. ‘우리가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협회도 그런 의미에서 만든 겁니다. 장애인 가족이 함께 생활하며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예요. 이런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도 기뻐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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