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시행사 실소유주인 이영복 회장의 비리 의혹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연루자를 엄단하라고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청와대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엘시티 의혹은 또 하나의 ‘최순실 게이트’로 박 대통령 측근 인사가 개입됐다고 주장한 것은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고 지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최 씨의 국정농단 관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박 대통령이 다른 비리 의혹 수사를 지시한 것은 누가 봐도 뜬금없는 일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검찰총장이 할 일까지 챙길 때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의도는 청와대가 엘시티 비리 의혹에까지 연루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고 자신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스스로 받아야 할 검찰 조사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엘시티 비리 의혹을 서둘러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볼 때 다른 복선이 깔려 있을 거란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19년 완공을 목표로 101층 1개 동과 85층 2개 동을 공사 중인 엘시티는 2011년 승인받을 때부터 특혜 의혹과 함께 이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으로 여야 정치인과 법조인 등에게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박지원 위원장은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이 열흘 만에 채무보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깝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정치인이라는 제보가 있다거나 이 회장이 ‘최순실계’에 매달 곗돈을 부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혹들은 대통령 지시가 없더라도 검찰이 알아서 규명해야 할 과제다.
만약 엘시티 의혹에 야당의 거물급 정치인이 연루됐고 이를 보고받은 박 대통령이 수사를 지시한 것이라면 최 씨 게이트 물타기로 정국의 반전을 꾀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을 지시한 내용과 중간 상황보고가 깨알같이 적혀 있고,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는 ‘최 선생님에게 컨펌(확인)한 것이냐’는 문자메시지가 나왔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위법 혐의를 피해가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최 씨 기소 전에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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