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하루키의 조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4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49위. 스웨덴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유니버섬이 세계 57개국 젊은 직장인 20만 명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로 나온 우리 순위다. 싱가포르(17위), 중국(27위), 필리핀(34위), 태국(40위), 베트남(41위), 인도네시아(45위), 말레이시아(46위), 일본(47위) 등이 한국보다 높았고, 조사 대상 아시아 국가 중 우리보다 행복하지 못한 나라는 인도 한 군데뿐이라니 우리는 정말 힘겹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12월. 올해 마지막 달이다. 연말이 가기 전에 나의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최근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직업 일반론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만약 그가 직장인에게 직업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첫째,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기회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하루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한다. 어느 직장, 부서, 직책이 아니라 나는 어떤 일(직업)을 하는 사람인가. 직장과 직업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요즘처럼 직장이 나를 보호할 수 없는 시대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직장이 조직이라면 직업은 내가 쌓아가는 전문성과 관련되며, 확실한 직업을 가질수록 직장에서 더 오래 생존하고 직장을 떠나서도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 지속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루키는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내 분야에서 어떤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가. 하루키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내적 충동과 강한 인내력이 있어야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그런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뛰어들어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인식하는 것과 그 분야에서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만의 직업을 만들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축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팀장이라는 직책으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과 팀원들을 새로운 리더로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셋째, 자기만의 학교를 가져야 한다. 하루키에게는 학교 수업이 아니라 독서 행위가 가장 중요한 학교였다. 나만의 학교에서 커리큘럼은 마음대로 짤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하루키는 많은 것을 배웠다. 직장인에게도 독서는 자기만의 학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를 찾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그들의 강연 동영상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혹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며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기만의 학교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만약, 지금 다니는 직장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직업)과는 상관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키는 입장권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고 이를 가지려고 시도하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한 문예지의 신인상이 문학의 세계로 나가는 입장권이었다. 직장인들에게는 관련 경험이 입장권인 경우가 많다. 지인 중 한 사람은 비서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인사 분야에서 직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비서 경력을 모두 인정받지 못했지만 과감하게 한 중소기업 인사부로 옮겼고, 경력을 쌓아 이제 더 나은 다른 직장에서 자기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궁리를 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표현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은 시간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다면 더 잘 썼을 텐데라고 생각되는 것은 없으며, 잘못 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보다 작가로서 역량의 문제라고 말한다. 시간을 신중하게 대할 때 시간은 내 편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16년 12월. 나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고 있는가? 힘든 직장생활 중에도 내 직업이, 결과물이, 나만의 학교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무라카미 하루키#인도#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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