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0년이라니…. 개봉 첫날 서울 명보극장 앞 카페에서 마음 졸이던 그때가 생생해요. 10년, 15년 지나면서 ‘아, 잊혀지는구나’ 했는데 30년이 돼가니 다시 또렷해지네요. 참 이상하죠.”
1986년 개봉작 중 22만 관객을 끌며 흥행 1위를 기록한 곽지균 감독의 멜로 영화 ‘겨울나그네’가 개봉 30주년을 맞았다. 1983∼198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최인호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강석우 안성기 이미숙 등 당대 청춘스타들이 출연해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곱씹게 했다.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 ‘민우’ 역할을 맡았던 배우 강석우(59)를 22일 만났다. 본업인 연기 외에도 예능 프로그램에선 자상한 아버지로,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달리는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에선 DJ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날이 쌀쌀해지거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틀면 라디오 청취자들이 영화 얘기를 많이 하세요. 아직도 다들 가슴에 그 영화가 남아 있는 거죠. 1985년 11월 셋째 주에 크랭크인을 했는데 윤동주 시비(詩碑) 앞에서 첫 촬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12월 초 낙엽을 긁어모아 보관했다가 12월 말에 뿌려 가면서 찍었거든요. 낭만적인 시절이죠.”
강 씨는 2010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감독과 2013년 암으로 별세한 최인호 작가에 대해서 특히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1978년 영화 ‘여수’에서 25세의 연출부 스크립터인 곽 감독님과 초짜 신인 배우인 제가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죠. 돌이켜 보니 감독님 작품은 남자 주인공의 삶이 모두 비극적으로 끝나더라고요. 영화 끝나고 몇 번이나 뵙고 싶다 해도 답을 안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무작정이라도 찾아뵙는 건데…. 인호 형은 우리 시대의 문화 지배자이자, 제겐 너무 좋은 형이었죠.”
젊은 세대에겐 드라마 속 ‘주인공의 중년 아버지’ 역할로 더 익숙한 그이지만, 겨울나그네 이후 ‘꽃미남 청춘스타’로 주연을 도맡았다. 하지만 그는 줄곧 매니저를 두지 않고 혼자 연기 생활을 하고 있다.
“스스로 스타라기보단 배우라고 생각해요. 3년 전에 누가 가장 인기 있었는지 기억나세요? 그렇게 인기는 순간인 거예요. 그걸 좀 일찍 깨달았던 거죠. 인기를 체감했지만 젖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중년이 돼 더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청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은 있죠. 하지만 중년은 더 큰 멋이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세상을 송곳처럼 뾰족하게 보지 않는다는 거고요. 인간과 일에 대해 둥글어진달까…. 거울 보면 머리카락도 흰데, 제 눈엔 훨씬 더 좋아요.”
그의 스케줄러는 웬만한 톱스타 못잖게 빼곡하다. “매일 오전엔 라디오 하고, 토크쇼도 진행해요. 최근엔 제가 선곡한 클래식 음반도 냈고, 2월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 제작에도 참여하고요. 1월 초부턴 드라마도 시작합니다. 아, 인터뷰 끝나고는 일본어 공부하러 가야 해요. 바쁘죠?(웃음)”
그는 여전히 겨울나그네를 기억해주는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겨울나그네는 동아일보에서 연재될 때도 보면서 울었고 소설로 나왔을 때, 시나리오를 볼 때 단계마다 눈물이 흘렀어요. 젊은 관객에겐 아름답고도 슬픈 그 시절 젊은이들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로, 기성세대들은 나의 청춘을 추억할 수 있는 영화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겨울나그네 1983∼1984년 동아일보 연재 후 발간된 최인호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영화로, 곽지균 감독의 데뷔작이다. 대학생인 민우(강석우)와 다혜(이미숙)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민우는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며 방황하다 동두천 어느 클럽의 보스가 된다. 다혜는 하염없이 민우를 기다리고, 그런 다혜를 사랑하는 민우의 선배 현태(안성기)와 클럽에서 일하는 은영(이혜영)까지 네 남녀의 슬프고도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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