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위기의 광풍이 몰아치던 20년 전 그는 제일은행 광화문지점의 40대 초반 당좌대출 담당 대리였다. “지옥문이 열린 것 같았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생활영어 정도의 어학 실력으로도 외국계 은행에서 살아남았고, 입행 36년 만인 2015년 1월엔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최초의 한국인 은행장이 됐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62)이다. 올해로 3년 차 행장이 된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SC제일은행 사옥에서 만났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뭐라고 보나.
“터질 게 터진 거였다. 선진국은 수백 년 걸려 이룬 산업화를 30여 년 만에 해냈다. 자본 축적이 안 된 상태였으니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밀어주는 식으로 경제 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은행이 정책 자금 배분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산업을 일으키는 젖줄 역할을 했지만 금융 산업 측면에선 문제가 있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로 불리던 5대 시중은행이 모두 간판을 내렸다.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졸업하기 전까지 금융권에서 9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때 삼성전자보다 법인세를 더 많이 내던 제일은행은 1999년 미국계 뉴브리지캐피털에 팔리며 외국계 은행이 됐다. 2005년엔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에 다시 매각됐다.
―당시 제일은행 직원들이 만든 ‘눈물의 비디오’가 크게 화제가 됐다.
“외환위기의 아픔을 고스란히 기록했기에 인구에 크게 회자됐다. 당시 현대그룹 직원이 ‘(정주영) 회장님 지시’라며 찾아올 정도였다. 그 영상 때문에 제일은행만 망한 걸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5대 시중은행이 모두 똑같이 무너졌다. 은행이 경제 개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은행이 방만 경영과 정경 유착을 해서 그렇게 됐다는 평가는 억울하다.”
1998년이 시작되면서 하루아침에 제일은행 40여 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떠나는 동료들은 “제일은행을 꼭 다시 일으켜 달라”며 울먹였다. 살아남은 직원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당시 제일은행 홍보실 직원들이 이 현장을 ‘내일을 준비하며’라는 제목의 영상물로 기록했다. 국민들은 이 영상을 돌려 보며 서러워서 울고, 남 일 같지 않아서 또 눈물을 쏟았다. 그래서 붙여진 영상물의 별명이 ‘눈물의 비디오’였다.
“은행 방만 평가 억울해”
―무엇이 억울하다는 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이 차관을 받고 원조를 받았지만 대한민국만 선진국이 됐다. 공무원 은행원 기업인 근로자 등이 비교적 깨끗했고 열심히 일했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을 인정받고 싶다. 당시 제일은행과 금융업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 이후 금융사들이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분명히 있다.”
―뭘 제대로 못 했다는 건가.
“기업과 은행을 비교하면 확실히 드러난다. 삼성 현대 등은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금융업은 그렇지 못했다. 은행원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고, 정책적 경제적 토양 같은 다른 요인도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금융당국이 금융개혁을 강조하며 규제도 줄이고 자율권을 주고 있다. 늦었지만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10년 후엔 지금과 같은 은행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2015년 1월 행장에 취임하고 열 달 만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했다.
“5년, 10년 후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국내 은행 수익의 80∼90%가 이자다. 모든 인원과 조직이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10%대 고금리 시대엔 통했지만 1, 2%대 저금리 시대엔 수익이 날 수가 없다. 수익 구조를 선진 은행처럼 다양하게 바꾸든가, 간부가 많은 항아리 모양의 조직을 고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20%에 가까운 직원을 내보내자 “제2의 눈물의 비디오 사태”라는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중에는 “희망의 비디오, 웃음의 비디오였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박 행장은 “모두가 살기 위한 선택이었고, 퇴직 동료들이 기꺼이 수용해준 결과”라며 고마워했다. “‘1000명 구조조정’ 승부수” ―한번에 1000명 가까운 직원이 나갔는데….
“이왕 하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해야 한다. 본사에서 5000억 원을 끌어와 최대 60개월 치 급여를 희망퇴직금으로 줬다. 그랬더니 나가는 직원도 웃으면서 떠났다. 한참 돈이 필요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직원 961명이 특별퇴직으로 나갔다. 선배로서 그나마 챙겨주고 내보낼 수 있어서 뿌듯했다. 외국에서 자금을 끌어와 한국 경제와 소비에 도움을 줬으니 애국했다고 생각한다.”
SC제일은행의 직원은 2014년 말 5233명에서 구조조정이 끝난 2015년 말 4438명으로 줄었다. 이 기간 직원 평균 연령은 41세에서 39세로, 지점장 평균 연령은 49세에서 47세로 내려갔다.
―본사가 5000억 원 지원 요청을 쉽게 받아들였나.
“처음엔 미쳤느냐고 했다. 4조5000억 원의 돈이 한국에 묶여 있는데 5000억 원을 더 달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나라에선 60개월은커녕 절반을 준 선례도 없었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며 설득했다. 자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니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다. 나를 걸고 가야지, 자리에 연연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박 행장은 2015년 10월 인력구조 개편 방안이 거론되자 본사 측에 “행장직을 걸고 한국 소매금융 비즈니스를 흑자로 전환시키겠다”며 최대 60개월 치 퇴직금을 주고 1000명 규모의 인력을 줄이는 방안을 역제안했다. 그는 “인력 효율성이 개선되면 수익성이 높아지니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봐야 한다. 한국인들은 신뢰를 주면 은근과 끈기로 목표를 달성한다”며 그룹 수뇌부의 마음을 일주일 만에 돌려놓았다. ―한꺼번에 인력이 빠져나가도 큰 문제가 없었나.
“인력의 15∼20%에 해당하는 고참 직원들이 한번에 빠져나갔다. 그래도 은행 시스템과 남은 직원들의 사기를 믿었다. 앞길이 뻥 뚫리니 젊은 직원들이 의욕을 갖고 뛰었다. 젊은 지점장이 직접 현장을 뛰면서 경험 부족을 의욕과 패기로 돌파하더라. 은행은 흑자전환이 됐고 직원도 자신감이 생겼다.”
―노조와의 갈등은 없었나.
“더 많이 지급했기 때문에 갈등이 없었다. 지금도 노조와 모든 것을 터놓고 상의한다. 떠난 직원도 똘똘 뭉쳐 은행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은행 직원들이 본사 정문 앞에 진을 치고 퇴직금 유치 경쟁을 벌였지만 퇴직금 5000억 원 대부분이 은행 예금 등으로 다시 돌아왔다.”
박 회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그리운 제일가족 2015’라는 동호회 앱을 보여줬다. 당시 회사를 떠난 퇴직 동기 943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그도 회원으로 등록해 종종 글을 올린다고 했다.
“‘제일’ 브랜드 살려 지난해 흑자”
―구조조정을 끝내고 넉 달 만에 제일 브랜드를 되살렸다.
“지난해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그룹 이사회에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제일’ 브랜드를 살려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사회 전날 오후 10시에 브랜드 담당 고위 임원을 호텔 라운지에서 만나 맥주를 마시며 3시간 동안 한국 금융사, 한국인의 기질, 외환위기 이후 변화 등을 설명하며 설득했다. 오전 1시쯤 되니까 고개를 끄덕이더라.”
박 행장은 당시 이사회에서 “한국 사업의 수익성 부진은 소매금융에 있다. 토종 브랜드인 ‘제일’을 사용하게 해주면 흑자로 전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2016년 4월 6일 법인명이 ‘SC제일은행’으로 바뀌었다. 한국만 예외를 인정해 4년 4개월 만에 ‘제일’ 브랜드가 되살아난 것이다.
―제일 브랜드를 찾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은행 이름을 되찾는 제막식에 2015년 회사를 떠난 직원들 대표와 80세가 넘은 제일은행 선배들까지 다 참석했다. 아침에 설렁탕 먹으며 은행을 함께 살려 나가자고 했다. 고객들도 많이 돌아왔다. 이름을 잃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다. 제일이 부실 은행의 대명사처럼 누명을 뒤집어썼는데, ‘조상제한서’ 은행 중 우리 이름만 살아남았으니 이런 오해는 씻어지지 않겠나.(웃음)”
SC제일은행은 약속대로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다. 2017년 2월 27일 빌 윈터스 SC그룹 회장은 세계 고위 임원들이 참석하는 오디오 콘퍼런스 콜을 통해 ‘환상적인 턴어라운드(Fantastic turnaround)’라며 SC제일은행의 2016년 실적을 극찬했다.
―앞으로의 전략은 무엇인가.
“은행은 슬림화, 첨단화로 가야 한다. 당면 문제를 풀고 조직과 사업을 정비하는 데 2, 3년이 걸린다. 인수합병(M&A)을 할 여력은 없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1차적으로 이종 산업과의 업무 제휴, 더 나아가 M&A도 할 수 있다. 회사를 인수한다면 금융사가 아니라 정보기술(IT) 회사를 하는 게 맞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생각도 거꾸로, 물구나무설 수 있어야 한다. 왜 금융업만 할 생각을 하나.”
박 행장은 얼마 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임원회의를 열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다른 업종을 돌며 현장 토론식으로 임원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섭외만 된다면 구글 사무실에서 임원회의를 한 번 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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