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미스터리 푼 열쇠, 5천년 전 토기에 새겨져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03시 00분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29> 동삼동 패총의 재발견 하인수 부산근대역사관장

동삼동 패총 토기조각(첫번째 사진)과 반구대 암각화(두번째 사진)에 새겨진 사슴 그림. 사다리꼴모양의 몸통과 선으로 간략히 묘사된 뿔, 얼굴, 다리 등이 서로 유사하다. 반구대 암각화를 신석기인이 처음 그렸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하인수 관장 제공
동삼동 패총 토기조각(첫번째 사진)과 반구대 암각화(두번째 사진)에 새겨진 사슴 그림. 사다리꼴모양의 몸통과 선으로 간략히 묘사된 뿔, 얼굴, 다리 등이 서로 유사하다. 반구대 암각화를 신석기인이 처음 그렸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하인수 관장 제공


《 한적한 어항(漁港), 배를 수리하는 어부들이 보인다. 8000여 년 전에도 고래와 물고기, 조개를 잡아 올린 어부들이 여기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데자뷔인가. 27일 부산 동삼동 패총(貝塚·조개무지) 유적에서니 코앞에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선사(先史)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무더기를 이룰 만한 장소였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음식물 쓰레기장이 아니었다. 1999년 하인수 당시 부산 복천박물관학예연구실장(57·현 부산근대역사관장)의 손을 통해 집터와 무덤(옹관)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이다. 기원전 6000년∼기원전 2000년 약 4000년에 걸쳐 신석기인들이 먹고 자고 버린 생활 흔적이 패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 ‘반구대 암각화’ 미스터리 풀 열쇠

“이기 뭐꼬? 그림 아이가?”

2004년 2월 초 부산박물관 연구실. 5년 전 동삼동 패총에서 손수 발굴한 토기조각들을 정리하던 하인수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토기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음각선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토기 표면은 붉은색이 완연했다. 대충 만든 게 아니라 채색까지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는 뜻이었다.

27일 부산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서 하인수 부산근대역사관장이 사슴 그림이 새겨진 토기조각을 살펴보고 있다. 하 관장은 2004년 유물 정리 과정
에서 사슴 그림을 우연히 발견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27일 부산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서 하인수 부산근대역사관장이 사슴 그림이 새겨진 토기조각을 살펴보고 있다. 하 관장은 2004년 유물 정리 과정 에서 사슴 그림을 우연히 발견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철로 만든 핀으로 토기에 묻은 흙을 조심스레 긁어내자 사다리꼴을 그리던 음각선은 다시 위아래로 이어졌다. 그의 눈은 점점 커졌다. 처음 눈에 들어온 사다리꼴은 몸통, 윗선은 머리, 아랫선은 다리가 분명했다. 그것은 신석기인들이 그린 한 마리 사슴이었다. 하인수의 회고. “다른 토기에서 흔히 보이는 조잡한 선이 아니었어요. 보는 순간 조형미가 느껴졌습니다. 사슴 그림이란 걸 알고서 온몸에 전율이 흐릅디다.”

그때까지 신석기시대 그림은 이것이 유일했다. 선사시대 그림은 매우 희귀한 데다 선사인들의 가치관과 정신세계를 유추할 수 있는 핵심 자료라는 점에서 귀중하다. 총 2만여 개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의 토기조각에서 그림을 찾아낸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 1차 조사에서 무늬가 없는 걸로 분류된 토기들을 모아 최종 확인하는 과정에서 건져낸 월척이었다.

무엇보다 동삼동 사슴 그림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미스터리를 풀 열쇠였다. 당시 학계는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잡이 그림 등을 근거로 청동기시대 후기 유물로 봤다. 석기로 고래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하인수의 생각은 달랐다. 암각화와 동삼동 패총 토기에 새겨진 사슴 그림은 전체적으로 간략하고 몸통을 사다리꼴로 표현했으며 몸통에서 이어진 선으로 다리를 표현하는 방식 등이 서로 유사했다. 더구나 뼈로 만든 화살촉이 박힌 고래 뼈가 울산 황성동에서 발견돼 신석기인들의 고래 사냥이 증명됐다. 이에 따라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인들이 처음 그렸다는 하인수의 주장은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 ‘신석기인은 원시적’ 편견 깨다

1930년대 일본 학자를 비롯해 1960, 70년대 미국 학자 A 모아와 서울대, 국립박물관이 동삼동 패총을 잇달아 발굴했지만 누구도 집터와 무덤을 찾지 못했다. 조개무지라는 선입견에 갇혀 내부에 다른 유구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인수는 속단하지 않고 토층 조사를 치밀하게 진행해 신석기시대 집터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옹관을 동시에 발견했다.

신석기인들은 수렵·채집에만 의존했다는 편견을 버린 것도 중요한 연구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패총 집터 안에서 기원전 3300년 무렵의 탄화된 조와 기장이 나왔고, 출토 토기에서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의 압흔(壓痕·눌린 흔적)이 발견됐다. 하인수는 “이는 이미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한반도 전역에 걸쳐 조, 기장 등 밭농사가 보편화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조개 팔찌’들. 조개에 구멍을 뚫어 만든 장신구다.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조개 팔찌’들. 조개에 구멍을 뚫어 만든 장신구다. 부산박물관 제공
한발 더 나아가 동삼동 패총 신석기인들이 해외 교역까지 한 정황도 포착됐다. 조개 팔찌 1500여 점과 일본산 흑요석, 조몬(繩文) 토기가 함께 출토된 것이다. 조개에 구멍을 내 장신구로 만든 조개 팔찌는 워낙 가공이 힘들어 귀한데, 일본 규슈 사가(佐賀) 패총에서 한반도산 투박조개 팔찌가 90여 점이나 발견됐다. 동삼동 패총에서 나온 흑요석들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일본 규슈 고시다케(腰岳)가 산지(産地)인 걸로 조사됐다. 하인수의 설명.

“동삼동 패총에선 배 모양 토기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이곳 신석기인들은 배를 타고 일본 열도까지 건너가 조개 팔찌와 흑요석을 교환한 걸로 보입니다. 한일 교류사는 멀리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죠.”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28>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

<27>경주 사천왕사터 발굴
 
<26>부여 왕흥사 목탑 터 발굴
  
부산=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동삼동 패총#동상동 패총 토기조각#반구대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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