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행복원정대/청년에게 희망을]스펙 높은데 보상은 제대로 안돼
“이런 내가 나도 싫다” 무력감 커… ‘실패 뒤 재기’ 심리교육도 필요
“카카오톡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놈의 ‘1’ 때문에….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병원에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강연장을 빼곡히 메운 20, 30대들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상대방이 확인하기 전까지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다. 1이 사라진 뒤에도 답해주지 않는 ‘읽씹(읽고 씹다)’에 청춘들의 자존심은 무너져 내린다.
지난달 11일 서울 서대문구의 문화공간 ‘앨리스’에서 열린 한 자존감 관련 강연의 열기는 뜨거웠다. 25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자존감 수업’(심플라이프)의 저자인 윤홍균 윤홍균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 강사로 나섰다. 준비된 60여 석을 넘는 100여 명이 몰렸다. 참석자의 대부분은 20, 30대 젊은이들이었다.
‘자아존중감’의 줄임말인 자존감은 스스로를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어떤 성과를 이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마음이다.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기 긍정과 실천력의 원동력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어떤 일에 도전하기도, 꾸준히 노력해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한 문화센터에 취직했다가 업무가 힘들어 지난해 그만뒀다는 반두리 씨(29)는 “10년 전보다 청년들의 스펙은 더 높아졌지만 갈 곳은 더 없어졌다”며 “제 또래들은 한마디로 상실감이 크고 무력감이 만연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 취업난 속에서 실패에 익숙해진 청년들 사이에서 “이런 내 모습이 나도 싫다”며 자존감 하락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알바천국이 1월 말 전국 20대 6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존감이 낮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40.6%를 차지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은 ‘의식의 면역 체계’와 같다”며 “신체 면역력이 약하면 질병에서 회복되기 어려운 것처럼 자존감이 낮으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포기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자존감 하락은 청년들의 행복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미국 하버드대 탈 벤샤하르 심리학과 교수는 “자존감과 행복의 상관계수가 0.6으로 아주 높다”며 “자존감은 행복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요소”라고 강조한다.
자존감 하락 등으로 행복을 잃어버린 청년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윤홍균 원장은 “사회가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더 많아지고 있지만 그들에게 제때 보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리상담기관인 허그맘은평센터의 김보미 부원장은 “청춘들에게 갑자기 ‘견디고 일어나라’라고 말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어릴 때부터 학교 교육 시스템에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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