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마다 시대정신이 있다. 그런데 이 시대정신은 사실 선거 전에 먼저 확정하기는 어렵다. 당선된 후보가 외쳤던 가치가 해당 선거의 시대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가피하게 사후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선거 과정에서 아무리 주목을 받고 호응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 후보가 낙선하면 그것을 시대정신이었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슬로건과 메시지에서 소위 ‘밀고 있는 가치’를 추려 실제 후보들과의 연관성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았다. 통합, 미래, 안보, 노동, 정권 교체를 정하고 온라인상의 정치기사에서 함께 언급되는 후보가 누구인지, 또 누리꾼들이 의견을 표출하는 정치기사 댓글에서는 각 가치와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누구인지 분석해 보았다.
먼저 ‘통합’을 키워드로 살펴보면, 언론 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3만5275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안철수(2만6303건), 홍준표(9460건), 유승민(7217건), 심상정 후보(2653건) 순이었다. 전 지역에서 두루 지지를 받겠다며 공식 선거운동 첫 유세지를 정치적 열세지역인 대구로 선택한 문 후보는 최근 통합을 부쩍 강조하고 있어서인지 기사에서 월등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댓글에서는 안 후보가 5937건으로 문 후보(4407건)보다 다소 많았다.
‘미래’ 키워드의 경우, 정치기사 중에서는 안 후보가 2만2021건으로 가장 많았다. 경선과정부터 미래를 특히 강조하는 연설을 한 것이 기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댓글에서도 미래와 안철수는 1만6805건으로 가장 연관성이 높았다. 대중의 인식에서 미래라는 가치는 안 후보가 선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보’ 키워드를 살펴보면, 홍 후보와 유 후보가 각각 2만3738건과 2만1439건으로 비슷했다. 보수 후보들이 안보를 부각시키며 위축된 안보 민감층을 흡수하고자 하는 행보가 기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 후보(4만4575건), 안 후보(4만1672건)보다는 적었다. 보수 후보들의 경쟁력이 높지 않다 보니 보수가 우위를 지녀 온 안보에서도 기사량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댓글도 비슷했다.
‘노동’ 키워드에서는 문 후보가 1만8221건으로 안 후보 1만1536건보다 많았다. 심 후보도 만만치 않았다. 9968건이었는데 이는 유 후보(7909건) 홍 후보(7796건)보다 많은 수준이다. 댓글에서도 심 후보는 문 후보와 안 후보보다는 적었지만 383건으로 홍 후보(154건), 유 후보(171건)보다 2배 이상 많아 진보 정당으로서 노동 중시 인식을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 교체’ 키워드의 경우, 정치기사와 댓글에서 모두 문 후보와 안 후보가 1, 2위였다. 두 후보 모두 야권 후보로 정권 교체 연관어로 많이 거론된 것이다. 안 후보도 ‘더 좋은 정권 교체’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권 교체는 제1야당이 프리미엄을 더 얻기 때문으로 보인다.
선거는 인물 간 싸움이긴 하지만 후보들이 선택한 가치들의 대결이기도 하다. 후보와 특정 가치가 한 팀이 되어 싸우는 게임인 것이다. 이제 ‘시대정신’이라는 영예의 타이틀이 어느 팀에 돌아갈지 결정되는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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