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40세, 미래를 준비하는 마지막 1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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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직장인으로서 마흔이 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조직에서 매달 월급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날이 평균 10년 남았다는 뜻이고, 동시에 조직을 떠나 독립할 수 있는 자기만의 기술을 만들 수 있는 날이 10년 남았다는 말이다. 직장인에게 40대는 정기적인 수입을 받으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10년이다.

20대 후반부터 30대 말까지 옥수수 전분업체와 라면회사에서 영업을 하던 김현규 씨. 마흔에 이르렀을 때 회사를 나와 기계 한 대를 놓고 충남 당진에서 기사 10여 명과 함께 국수공장을 시작했다. 그때가 1987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이 국수사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이 규제가 풀리면서 국수사업도 어려워졌다. 결국 당진에서 공장을 접고 60세가 가까워진 2006년 고향인 경남 거창으로 내려와 다시 기계 한 대로 국수공장을 시작했다. 이때는 혼자였다. 막상 혼자 국수를 만들어 보려니 쉽지 않았다. 기계가 아닌 햇빛에 국수를 말리다 보니 비가 오면 못 하고, 국수가 퍼지기도 하고 말이 아니었다.

‘안 하면 모른다. 직접 해봐야 안다’는 생각으로 온갖 실험과 실패를 반복했다. 전분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자료를 찾아보며 제대로 된 국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세상의 흐름을 자신의 시각으로 읽어냈다. 식생활은 주역이 쌀에서 밀가루로 변해가고 있고, 국수를 먹을 때는 밥처럼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아 영양에 문제가 생기는 점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수 제조 과정에서 우리가 반찬으로 먹던 김치, 부추, 단호박, 양파 등을 통으로 갈아 넣고 미네랄과 식이섬유가 포함된 더 건강한 국수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실험했다. 2014년에 와서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네 근처에서 저렴한 가격의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2016년 공무원과 회사원 생활을 하던 딸 김상희 씨가 마흔이 되자 직장을 접고 국수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만든 국수를 동료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가 특별하고 맛있다는 칭찬을 들었고, 거창에서만 팔지 말고 더 큰 시장에 소개하라는 권유에 힘을 낸 것이다. 영화 등에 대해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딸은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하여 아버지 국수를 ‘거창한 국수’로 브랜딩하고 새로운 유통망을 찾아 고급 국수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맡았다. 사진을 찍는 남편도 도왔다.

동네 주변에서 국수를 팔던 아버지는 딸의 브랜딩에 대해 못 미더워했고, 저러다 그만두겠지 했지만 이제 이 국수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없어서 못 사는 국수가 되었다. 여전히 기계 한 대를 놓고 채소나 과일을 통으로 갈아 넣어 만든 면을 햇빛에 말리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칠십이 된 아버지는 앞으로 다양한 국수를 개발해 만드는 작업에 흥분돼 있었다.

마흔에 새로운 전환과 실험을 시작한 부녀의 스토리를 접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첫째, 자기만의 기술이 있어야 하며 이런 기술의 발판을 40대에 만들지 못하면 직장을 떠나서 기반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내가 가진 기술만으로 설 수도 있겠지만 나와 보완 관계에 있는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김현규 대표와 전화로 인터뷰했을 때 농촌에 과일 농사를 짓는 사람은 많지만 이를 도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고 브랜딩하여 인터넷 등을 활용해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도시에 있는 젊은이들이라면서 도시가 아닌 농촌에 젊은이들의 기회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젊은 세대와의 협업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시대는 아버지보다 자녀들이 더 힘들게 사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기술 등의 빠른 변화와 발전으로 아버지 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더 똑똑한 세상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나보다 나이 어린 선생님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후배에게서 배우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김 대표 역시 딸의 기술과 젊은 안목이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과 같은 흥분되는 변화를 전혀 모르고 지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40대는 또 금방 지나간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자기만의 기술#노후대책#마흔#나이 어린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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