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냐?” “나도 아프다.” 유독 아픈 곳이 많은 현대인들. 너무 아프다 보니 이제는 ‘힐링’이란 말이 일상어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료하고 있을까요. 개인적인 치유에서 이제는 산업이 된 ‘힐링’의 세계를 엿보았습니다. 》
다양한 힐링들
“국토대장정을 떠났는데 걷는 것 자체보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힐링을 준 뜻하지 않은 경험을 했습니다. 갑자기 비가 오는데 잠잘 곳을 마련해준 분, 힘들겠다며 한 숟가락 뜨고 가라고 권하던 아저씨…. 다음에는 그런 분들을 만나기 위해 대장정을 할 생각입니다.”―류동이 씨(24·부산대)
“레몬그라스향을 맡으면 일상에서 탈출하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소나무향과 레몬향을 1 대 3 비율로 섞으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머리를 맑게 해줍니다. 어떤 향은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하죠. 실제로 향을 맡는 동안 갑자기 중학교 때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강수민 씨(40·아로마테라피 대표)
“독립을 하니까 외롭더라고요. 점점 무기력해지는 제 모습을 바꾸려고 우연히 피포 페인팅(밑그림이 그려진 종이에 기입된 색을 칠하는 것)을 하게 됐죠. 자유스럽게 그림을 그리면 이것저것 생각해야 해서 번거롭고 집중이 잘 안 됐는데, 정해진 칸에 색까지 지정된 것을 칠만 하다 보니 오히려 집중이 되고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정화되더라고요.”―윤영란 씨(27·직장인)
“휴대전화를 꺼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제 나름의 힐링 방법이죠. 일부러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슬픔을 극대화시키다가 감정이 폭발하면 엉엉 울면서 우울함이나 스트레스를 털어버려요. 생각보다는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양은비 씨(23·부산대 학생)
“종강 과제가 템플스테이였어요. 절이란 곳이 어떤 데인지 몰랐는데 처음엔 낯설었지만 좀 있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절에서 나는 향냄새도 마음을 편하게 해줬고 아무런 말없이 바람을 느끼는 순간도 좋았어요. 명상 같은 것도 일상 속에서 하지 않는 행동이다 보니 맑은 기운을 얻어 가는 것 같아요.”―원희성 씨(23·경희대 학생)
힐링 과잉시대?
“우리는 힐링을 너무 자주, 가볍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뭔가를 살 때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힐링이라고 말하니까요. 저도 힘든 일이 생기면 힐링을 외치곤 하지만 문득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굳이 찾아가며 힐링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닌가 반성도 하게 되고요.”―조송현 씨(30·직장인)
“현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에 노출되었습니다. 경쟁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가 생깁니다. 워낙 오랫동안 많은 상처가 생기다 보니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하는 거죠. 그것이 힐링입니다. 자극적인 행위나 중독으로 빠져드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망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최삼욱 씨(48·진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과거에는 사람들이 훌륭한 스승이나 누군가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고 했다면 현대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힐링 에세이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죠. 행간을 읽으며 독자 스스로 공백을 채워가다 보면 책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되거든요.”―이기주 씨(‘언어의 온도’ 작가)
이거 힐링 맞아요?
“얼마 전 직장 상사가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힐링 겸해서 등산을 가자는 거예요. 그 전주에 휴일 당직이라 일주일 내내 근무했거든요. 상사에게는 힐링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휴일이 없어진 거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기자랑까지 준비하게 되어서 그 주 내내 퇴근 후 남아서 연습까지 해야 했는데 이거 힐링 아니죠?”―김지혜 씨(26·직장인)
“가족과 함께 힐링으로 온천여행을 갔는데 도착한 날 탕에서 나오다 미끄러져 꼬리뼈에 골절을 입었어요. 너무 아파서 소리도 안 나오더라고요. 바로 병원 가서 치료받고 여행 취소하고 돌아왔는데, 그날 이후 우리 가족에게 ‘온천 힐링’은 금기어가 되었습니다.”―정모 씨(40대·과외교사)
“영화나 블로그에 보면 나 홀로 멋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힐링으로 괜찮아 보여서 해외여행을 혼자 갔는데, 일주일 내내 식당에서 주문하고, 차표 끊을 때 빼고는 한마디도 못 하겠더라고요. 제가 영어 울렁증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입에 거미줄 치고 사는데 외롭고 심심해서 죽을 뻔했어요. 나 홀로 힐링 여행은 제게는 아니더라고요.”―한성재 씨(20대·고려대 학생)
변질된 힐링들
“힐링이 유행이 되다 보니 상업적으로 너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아요. 힐링 안마기, 힐링커피, 오죽하면 술 광고도 힐링을 콘셉트로 할까요. 그래서 요즘은 힐링이란 단어를 보면 마음의 치유가 되는 느낌보다는 ‘아 뭘 또 팔려나 보다’란 생각이 더 들어요.”―노기영 씨(34·변호사)
“‘힐링’이라는 단어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무엇인가를 개선해 내는 게 아니라 혼자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뜻이 더 강하죠. 다소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의미입니다. 힐링을 하는 순간의 즐거움이 기분 전환은 해주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죠.”―김헌식 씨(43·대중문화평론가)
“힐링의 방법이 좀 잘못된 것 같아요. 힐링이란 바쁜 생활에서 짐을 내려놓고,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적으로 천천히 살아가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스트레스 해소 방편으로 이런 걸 사고, 먹고, 행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SNS에 알리고 과시하죠. 이것은 힐링의 본질적인 의미와는 다른 것입니다.”―이준영 씨(40대·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산업이 된 힐링
“데이트 중에도 각자 하고 싶은 게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여성은 손톱관리를 받고, 남성은 안마의자에서 안마를 받으면서 각자 힐링을 하고, 끝난 뒤에 같이 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게 힐링 카페죠. 다른 힐링 카페와 달리 독립된 방을 여러 개 만들었더니 더 인기가 좋아요. 방에서 서로 힐링이 잘되나 봐요.”―김모 씨(32·힐링 카페 직원)
“최근 두 달(4월 1일∼5월 31일)간 에세이 분야의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5% 증가했습니다. ‘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법륜 스님의 행복’ 같은 힐링 에세이들이 많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상 속에서 잔잔한 위로를 받을 수 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도헌선 씨(36·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소비자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화장품 용기에 ‘힐링’이란 말을 넣었습니다. 일반적인 크림보다 힐링 크림으로 알려지는 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거라 생각한 거죠. 실제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힐링’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품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장용건 씨(36·화장품 회사 직원)
“여행 상품도 힐링 콘셉트가 인기입니다.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상품이 대세죠. 캐나다 국립공원 여행 상품은 방송 중 10초에 8건씩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어요. 화장품도 고급 스파에서 사용하는 상품이 인기가 좋습니다.”-김유미 씨(롯데홈쇼핑 대리)
“힐링 음식, 힐링 운동, 힐링 관광. 이렇게 힐링이란 단어가 붙으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질 거 같은 그런 기대감을 갖도록 해요. 여가 활동을 통해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경향이 강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힐링하는 것에는 과감히 지갑을 여는 습성이 있는데 기업들이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거죠.”―한상린 씨(50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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