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도쿄 특파원의 글로벌 뷰]고이케의 ‘생활밀착 정치’ 표심 잡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4일 03시 00분


의사당내 금연… 휴일보육 지원 늘리고 양변기 보급 확대
도쿄도 선거 압승 비결은


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도쿄(東京)도민이 도정(都政)을 되찾아온 순간이다.”

2일 치러진 일본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자민당을 격침시킨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도민의 눈높이에서 추진해 온 성과가 인정받았다”며 선거 결과를 이렇게 정리했다.

고이케 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는 이번 선거에서 전체 127석 중 55석(당선 후 합류한 무소속 포함)을 얻으며 제1당이 됐다. 자체 공천 후보 50명 가운데 49명이 당선됐다. ‘고이케 걸스’로 불리는 여성 후보 17명도 모두 당선됐다. 가히 ‘고이케 태풍’이라고 일컬을 만한 ‘완벽한 승리’였다. 도민퍼스트회와 제휴한 공명당 등 우호 세력을 포함하면 고이케 지지 세력은 과반(64석)을 훌쩍 넘는 79석까지 올라간다.

반면 아베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은 기존 의석(57석)의 절반도 지키지 못하고 23석 확보에 만족해야 했다. 자민당의 역대 최소 의석이었던 38석(1965년, 2009년)도 무너지면서 아베 총리는 심각한 리더십 위기를 겪게 됐다. 아베 총리는 3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준엄한 질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깊이 반성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고이케 압승의 비결은 철저하게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접근했다는 점이다. 공약으로 의원 공용차 폐지, 정무활동비로 식사 금지, 의사당 내 금연, 상임위 활동 인터넷 중계 등 거대담론 대신 구체적이면서도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을 내세웠다. 보육 서비스 인력 정원 7만 명 확충, 휴일보육 지원 확대, 양변기 보급 확대 등 생활 밀착형 공약들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장 유세에서 헌법 개정 논란이나 아베 총리의 스캔들에 집중하기보다는 ‘낡은 도정’에 타깃을 맞췄다. 뉴스 앵커 출신이라는 이색 경력을 살려 알기 쉬운 표현과 구체적인 수치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말만 앞세우지 않고 행동으로 변화를 실천한 점 역시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이케 지사는 지난해 8월 취임 후 자신의 연봉을 절반(2896만 엔→1448만 엔)으로 삭감하고, 예산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올림픽 신축 경기장 3곳 건설을 보류했다. 의회의 반발에도 당시 제도로 남아 있던 ‘쪽지예산’을 없앴다. 예산안에 없는 항목이라도 의회 측이 요청하면 부활시키는 정당부활예산제도는 정의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다. 일련의 개혁적 조치로 치솟은 지지율은 한때 80%를 넘었고 지금도 60∼70%를 오간다.

필요할 때 승부를 거는 배짱은 고이케 지사가 가진 강점이다. 자민당 소속이었던 그는 지난해 ‘제명하겠다’는 자민당 지도부의 협박을 뿌리치고 공천도 받지 않은 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녹색을 입고 모이자’는 글을 올려 유세장에 ‘녹색 물결’을 만들었다. 이후 ‘녹색’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는 지난달 15년 동안 몸담았던 자민당을 탈당하고 도민퍼스트회 대표로 취임했고, 이후 101번이나 가두연설을 다니며 선거에 ‘다걸기(올인)’했다.

일부 언론에선 고이케 지사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비유하기도 한다. 개혁을 부르짖으며 등장한 신생 정치세력이 기성 정치권을 무너뜨리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신이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다’고 질문하자 “하고 있는 것은 같다.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후보를 내세워 싸우고 있다”고 인정했다.

세간의 관심은 고이케 지사의 향후 행보에 쏠린다. 전국 정당을 만들어 중앙 정치로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본인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고이케 지사는 2일 밤 선거 승리 후 ‘(전국) 신당 창당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도민을 위한 최선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30∼40%대인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그만큼 고이케 지사로 더 힘이 쏠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조만간 대폭 개각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개각 카드로 이반된 민심을 돌이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관저 안팎에서는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후 아베 총리가 사퇴한 것을 떠올리며 ‘10년 만에 악몽이 되살아났다’는 말도 나온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고이케#일본#도쿄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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