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비공식 만남’을 가진 게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두 정상의 비밀 대화는 2시간 15분의 이례적으로 긴 정상회의를 가진 뒤 열린 G20 정상들의 만찬 자리에서 이뤄졌다.
18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G20 정상회의 기간에 푸틴과 비밀에 부쳐진 1시간의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도중 원래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푸틴 대통령의 옆자리에 앉았다. 통역도 없이 ‘혼자’ 푸틴에게 다가간 것. 푸틴 역시 통역 외에는 누구도 대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얼핏 보면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워싱턴 정가와 주요 언론은 모두 ‘트럼프가 또다시 러시아와 말썽을 일으켰다’는 분위기다. 해킹과 가짜뉴스 게재 등을 통해 지난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 대통령과 자국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긴 시간 대화를 나눴고, 백악관 공식 기록에도 남기지 않은 것 역시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의혹을 더 키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두 정상이 몰래 대화하고 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 자체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대통령이 보좌진이나 통역 없이 외국 정상과 대화를 장시간 나눈 건 안보 규정 위반이란 지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 스캔들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다. 최측근이며 가족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아들 트럼프 주니어까지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 특히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의 대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해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러시아 측 인사를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이로 인해 미 상원의 조사도 받아야 한다.
러시아 스캔들을 떠나 적대국 대통령과 은밀한 대화를 나눈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뒤 늘 제기된 ‘트럼프는 정·관계 분야의 리더로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을 다시 한 번 키운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WP는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트럼프가 미국의 주요 적대국 리더(푸틴)와 너무 친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시나 비밀 대화에 대한 보도에 발끈하고 나섰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가짜뉴스가 점점 더 부정직해지고 있다. 톱(Top) 20 정상들을 위해 마련한 만찬도 사악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다”고 오히려 WP를 비난했다.
하지만 보도 직전 발표된 ABC방송과 WP의 여론조사(10∼13일) 결과 응답자의 68%가 ‘트럼프는 대통령 역할에 맞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56%는 ‘트럼프의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이 대통령직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 핑계 대기 전에 자신의 처신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옛말에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선 갓을 바루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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