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 위안부 재단 1년과 언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일 03시 01분


심규선 고문
심규선 고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로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이 지난 28일로 1년이 됐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문재인 정부가 합의 과정과 재단 운영과정에 대해 검증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재단의 존폐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공사석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재단의 존폐 여부는 재단이 아니라 새 정부가 결정할 일이다. 다만, 새 정부가 국익과 정서 사이에서 현명하게 대처해 주길 바랄 뿐이다.

오늘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다른 문제다. 재단과 언론의 관계다. 지난 1년간 나는 재단의 이사로 일하면서 언론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이 불편했다. 내가 30년 이상 몸담아온 언론계가 재단에서는 신뢰와 존중을 받지 못했다.

늘 얘기하지만 한일문제는 유일하게 남은 ‘보도의 성역’이고, 그 성역을 깨지 않기 위해 기자들은 자기검열을 한다. 일본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면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스스로 조심한다는 뜻이다. 누가 가르치지도, 누가 지시하지도 않는데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화해·치유재단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거의 적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자인 내가 이런 지적을 하면 친정인 언론계를 두둔하지는 못할망정 앞장서 망신을 준다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보도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은 언론은 나를 길러준 친정이 아니다.

특정 그룹에게 매우 불리한 환경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한다. 화해·치유재단은 운동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재단은 1년 내내 홍보가 아니라 해명과 반론에 쫓겼다.

가장 흔한 공격이 재단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해서 현금을 받도록 강요했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첫째, 한 할머니 당 평균 4차례 이상 만나서 의사를 확인했다. 재단은 그 사실을 서류로서 증명할 수 있다. 나중에 연로해서 의사표시 능력이 떨어진다면, 어떤 말에 무게를 둘 것인가. 당연히 정신이 맑았을 때 밝힌 의사를 존중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둘째, 현금을 싸다가 주고 도망치지 않는 한 강제로 현금을 받게 할 방법은 없다. 모든 현금은 할머니들이 밝힌 계좌로 입금했다. 본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재단은 할머니들의 계좌번호를 알 방법이 없다.

셋째, 재단은 커미션이나 인센티브를 받지 않는다. 더 많은 할머니들이 현금을 받는다고 해서 재단과 이사들이 이득을 보는 것은 없다. 재단과 이사들이 받은 것은 비난뿐이고 먹은 것은 욕뿐이다.

나는 일본관련 보도, 그 중에서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기사도 보도의 원칙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믿는다. 위안부 합의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얼마든지 수용하겠다. 그러나 재단이 부도덕한 일을 음험하게 진행하는 기관이라는 선입견은 버려줬으면 좋겠다.

김태현 이사장이 취임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 엔은 모두 할머니들을 위해 쓰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이 돈에서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를 쓰고 있다고 비난한 기사도 있었다. 지난해 말에는 야당이었고 지금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요청한 재단 예산을 몽땅 삭감하고 1원도 주지 않았다. 며칠을 굶겨 놓고 너무 배가 고파 남의 밥에 손을 대자 기다렸다는 듯이 뺨을 때리는 것은 옳지 않다. 먼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다. 재단을 없애라는 주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사용처의 일부를 전용한 것을 두고 재단 이사장의 무능이나 부도덕, 약속위반으로 몰고 가는 것은 부당하다. 재단 이사회는 지금도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로 쓴 돈은 나중에라도 정부가 지급해야 한다, 그것이 국격에 맞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생존자 47명 중 36명의 할머니들이 1억 원씩의 현금을 받겠다고 했다(34명은 이미 받았고 2명은 심사 중). 1억원을 받았다고 해서 합의를 100%수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36명의 숫자나, 할머니들이 왜 고민 끝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언론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만 반복해서 보도한다. 현금을 받은 할머니의 선택도도, 받지 않은 할머니의 선택도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언론은 의견이나 호불호를 표하기에 앞서 사실을 보도할 의무가 있다.

언론은 불리한 기사를 쓸 때 반론권에 많은 신경을 쓴다. 그러나 재단 기사에 대해서는 반론권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간혹 해명을 듣고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재단 보도에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보도 원칙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반론권은 시혜가 아니라 의무다.

최근 재단이 ‘주변의 예상을 일축하고 계속해서 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연히 문을 닫아야 할 기관이 욕심을 내서 자리보전을 하려 한다는, 매우 부도덕하다는 인상을 주는 기사다. 그 반대다. 당장 이사직을 내려놓고 싶지만, 새 정부의 방침이 결정되지 않는 마당에 재단이 문을 닫으면 일본에게 빌미를 줄 것 같아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기자는 남이 먼저 쓴 기사나, 비슷한 내용의 기사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재단을 비난하는 기사는 계속 나온다. 그 기사가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수십 번, 수백 번 쓰더라도 그건 언론사의 자유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재단관련 기사는 그렇지 않은 게 많다.

좋은 예가 있다. 지난달 초 한 인터넷언론이 재단이 ‘할머니를 회유해 위로금 지급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재단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했다. 재단의 주장은 회유를 한 적이 없고 본인이 원해서 지급을 했다는 것이다. 위원 5명의 일치된 의견은 이렇다. ‘재단이 제출한 자료는 상당히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판단됨. 해당 기사는 일부 내용의 수정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전체 기사의 틀이 다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임. ○○○○○가 이를 반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면 재단측의 정정보도를 수용해야 할 것임. 수용하지 않아 소송까지 가게 되면 민형사상 책임이 있고, 회사에 큰 피해를 줄 것임.’ 그러나 이 매체는 끝까지 정정보도를 거부했다. 본인들의 취재내용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기사 전체를 바로잡으라고 하는 마당에 대체 뭐가 ‘확인됐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힘센 기관에 대해 기사를 잘못 써서 이런 권유를 받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여성가족부가 재단의 운영과정을 검증하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그래서 부탁한다. 지금껏 재단의 현금지급이나 운영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보도 내용을 철저하게 검증해 주길 바란다. 만약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면, 분명하게 공표해 주길 기대한다.

외교부의 검증도 마찬가지다. 어제 검증위원을 발표했다. 위원 공개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합의에 관여했던 사람을 카메라나 마이크 앞에 세우는 것은 반대한다. 그건 포퓰리즘이자 망신주기다. 선입견을 갖지 말고 엄격하게 검증해서 그 결과를 가감 없이 공개해주길 바란다.

김태현 이사장의 사임을 보도한 일부 일본 언론의 보도태도에는 상당히 실망했다. 어떤 신문은 김 이사장의 사퇴로 재단의 활동이 사실상 종료됐다고 보도했다.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할 때도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일본은 재단의 존속을 촉구해야 마땅하다. 나는 일부 일본 언론이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아니라면 좋겠다.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판단의 근거로 삼고, 새 정부에게 시간을 주길 바란다. 나중에 혹시 한국 정부가 합의의 보완을 요청한다면 합의 위반이라고 내치지 말고 진지하게 검토해 주길 바란다. 검토를 하고 나서 입장을 밝혀도 늦지 않다.

마이니치 신문은 1일자 사설에서 한국의 ‘검증’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2014년 아베 신조 총리의 ‘고노담화’의 검증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담화를 고치는 것이 소신인 총리가 담화를 검증하고 “정권으로서 계승한다”고 말했지만, 검증하겠다는 태도 자체가 의문을 부른 무익한 검증이었다고. 한국의 검증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일본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 신중하게 지켜보길 기대한다.

나는 미디어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의 언론NPO의 조사에 따르면 ‘상대 국가의 정보를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의 94.3%가, 일본인의 93.2%가 자국의 미디어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미디어 종사자는 좀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일본도 제발, 10억 엔을 냈으니 모든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일본에게 합의 이상의 것을 요구할 생각도 없지만, 한일 양국이 자발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할 일은 적지 않다. 위령, 교육, 기억, 연구 사업 등이다. 그러니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시노즈카 다카시 애틀란타 총영사의 발언은 일본은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발언으로 간주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나 기관도 언론의 보도나 감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게 언론의 존재가치다. 그러나 눈 위에 눈을 더하고, 모래 위에 모래를 더하는 기사는 뉴스로서 가치가 없다. 모래 위에 내리는 눈, 눈 위에 뿌리는 모래라야 뉴스로서 가치가 있다. 화해·치유 재단이 언제까지 존속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새로운 테마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다룬 기사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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