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소아과에서 아이들이 잇달아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에 베테랑 의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갓 의사 가운을 걸친 스무 살 청년의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40대에 유학길에 오른 그는 196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도서관에서 의학서적을 읽다가 소스라친다. 우유나 모유의 유당을 분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이 소개된 대목에서 그의 시선이 멈췄다. 유당불내증 신생아의 경우 우유나 모유를 소화하지 못해 끝내 영양실조로 사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가 20여 년 전 목격한 충격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유당불내증 치료약 개발에 매달린 그는 1966년 유당이 없고 3대 영양소가 풍부한 콩으로 만든 두유를 개발했다. 식물성 우유(Vegetable Milk)라는 의미를 담아 ‘베지밀’로 이름을 지었다. 국내 첫 두유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두유인 베지밀을 개발한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사진)이 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0세. 재계 창업주 가운데 최고령이다.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세에 최연소로 의사 검정고시에 합격한 정 명예회장은 평생을 의술 연구에 매달린 타고난 의사였다. 그는 특히 유당불내증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1973년 정식품을 창업한 것도 돈보다는 더 많은 아이들이 치료받길 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환자가 몰려 두유 수요가 달리자 회사를 세워 대량 생산에 나섰다. 56세의 나이에 늦깎이 사업가가 됐다. 1984년 세계 최대 규모의 두유 생산 공장을 충북 청주에 지은 그는 이듬해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제품 개발에 매진했다. 1986년부터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서 후견인 역할을 했다.
올해 100세로 재계 최고령 창업주인 정 명예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배움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5년 당시 98세였던 정 명예회장은 본보(2015년 6월 15일자 참조)와의 인터뷰에서 “배움을 통해 도전하는 느낌, 지식이 확장되는 느낌, 그래서 매일매일 나아지는 느낌이 삶의 즐거움이자 삶의 원천”이라며 자신의 건강 비결을 털어놓았다. 정식품 관계자는 “최근 청력과 시력이 나빠져 책과 운동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면서 “평생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은 분”이라고 말했다.
오래전 경영에서 손을 뗐지만 ‘콩’과 ‘유당불내증’에 대한 관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2015년 경북 영주시가 콩의 역사와 쓰임새를 집대성한 ‘콩 세계과학관’을 짓는다는 소식에 그는 2억 원의 기부금을 쾌척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개관식 현장을 찾았다. 최근까지도 회사를 찾아 유당불내증 개선을 위한 신제품 개발을 독려했다. 평생을 의술과 콩에 매달린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 열정을 놓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정성수 정식품 회장과 딸 조숙, 명숙, 인숙, 민숙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2일 오전 8시. 02-30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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