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에서 겨울로. 그 열차의 정점은 단풍입니다. 특히 이번 주말은 충청 이남 지방에서 단풍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절정기라네요. 팔도강산을 붉게 수놓은 단풍놀이를 놓친 분들을 위해 단풍에 얽힌 이모저모를 담아봤습니다. 》
가을은 단풍의 계절
“지난해 9월 개장한 경기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 출렁다리는 아직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단풍 명소예요. 150m에 이르는 다리를 건너면서 발아래 펼쳐진 단풍 절경을 보는 짜릿함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겁니다. 특히 다리가 출렁일 때 사진을 찍으면 배경이 흔들리는 느낌을 담은 ‘인생샷’을 건질 수 있어요.” ―조대휘 씨(46·파주 애니펜션 사장)
“대만에서 4박 5일 일정으로 가족들과 한국 여행 왔습니다. 일정이 짧아서 서울에서 지낼까 했지만 내장산 단풍이 워낙 좋다고 한국 친구가 강력히 추천해서 찾아왔습니다. 대만에서도 단풍은 볼 수 있지만 뚜렷한 기후변화가 없어 단풍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아요.” ―제니퍼 예 씨(39·대만 관광객)
“서울에도 의외로 좋은 단풍 명소가 많습니다. 지하철 혜화역 근처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각종 공연과 함께 영화 같은 단풍 풍경을 즐길 수 있어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낙산공원 둘레길은 길 양쪽으로 단풍이 우거져 산책하기에 그만이고요. 옛날엔 소나무밭뿐이라 사시사철 푸른색이던 풍경이 동화마을처럼 알록달록하게 변해서 좋습니다.” ―박한식 씨(76·서울 종로구 이화마을 거주)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단풍 관광지는 일본이에요. 9∼11월 일본 전역에서 단풍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단풍나무가 많거든요. 특히 온천을 하면서 단풍을 볼 수 있는 게 매력이죠. 위도와 시기별 단풍 정보를 담은 ‘모미지(단풍) 지도’를 참고해 여행일정 짜는 걸 추천합니다.” ―정지윤 씨(하나투어 홍보팀)
“저는 서울 양천구 목동, 동생은 여의도에 사는데 모두 30∼40년이 넘은 나무들이 많아 황홀한 단풍길이 펼쳐지죠. 아가씨였을 땐 꽃나무가 흐드러진 황홀한 풍경이 좋았는데 할머니가 되니 뒹구는 낙엽 보는 게 그리 좋네요. 쓸쓸한 마음이 드는데, 그게 나쁘지 않아요.” ―김순옥 씨(70대·목동 거주)
“나는 단풍이 싫어요∼”
“내장산 백양사에서 공양을 전담하는 사람이 두 명인데, 평소에는 70∼80명분만 음식을 준비하면 되지만 단풍철에는 사람이 몰려 400명분 이상 준비해야 하니까요. 봉사자들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힘들어요. 저희에게는 되레 힘든 날이죠.” ―무상화 씨(불명·59·백양사 공양 담당)
“저는 빨강 노랑 갈색 등이 애매하게 섞인 산보다 푸르른 산이 훨씬 좋아요. 단풍이 절정이라는 건 곧 가을이 꺾이고 겨울이 온다는 건데, 그래서 그런지 스산한 느낌이 드는 게 싫고요. 특히 은행나무 열매를 밟기라도 하면 냄새 때문에 아주 곤혹스럽죠.” ―이모 씨(37·서울 마포구)
“가을이 되면 낙엽 때문에 쉴 새 없이 쓸고 담아야 해요. 낙엽이 멋지다고 좋아하는 분도 있지만 먼지가 나고 바람이 불면 눈에 들어간다고 싫어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단풍철에는 허리도 아프고 무거운 더미를 옮겨야 하니 아무래도 힘들죠. 낙엽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은행잎은 춘천 남이섬에 깔아서 다시 쓰고, 다른 낙엽들은 농가로 보내 퇴비로 사용합니다.” ―이모 씨(50대·환경미화원)
지역마다 달라요
“내장산은 온대 중부기후대와 남부기후대가 만나 단풍 수종이 다양해요. 남쪽에 주로 사는 단풍나무와 북쪽의 당단풍나무는 물론 아기단풍, 좁은단풍 등등 무려 11종을 관찰할 수 있죠. 각각 수령 280년, 250년으로 조사된 백련암 암자의 단풍나무와 금성계곡의 단풍나무가 특히 유명합니다.” ―김수미 씨(40·내장산국립공원 탐방담당자)
“국내 단풍이 알록달록 수줍어하는 고운 새색시의 자태라면 캐나다의 단풍은 힘이 넘치는 혈기 왕성한 청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 단풍 명소인 메이플로드에 다녀간 고객들은 자연의 위대함에 뭉클함을 느낀다고들 하죠. 각각 캐나다의 스위스와 프랑스라 불리는 몽트랑블랑과 올드퀘벡의 화랑가 주변도 추천합니다.” ―정병근 씨(46·캐나다 현지 여행 인솔자)
“20년 지기인 동네 친구들과 백양사로 단풍 구경을 왔습니다. 강원도는 산세가 험해서 힘들게 산을 오르내려야 제대로 된 단풍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둘레길만 걸어도 충분히 예쁜 단풍을 볼 수 있어서 나이 드신 분들이 놀러 오기에 좋은 곳이네요.” ―김소영 씨(61·강원 춘천시 석사동)
아는 만큼 보인다
“단풍은 날이 맑고 일교차가 클수록 울긋불긋한 아름다움이 더 잘 나타납니다. 붉은 단풍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 때문에 나타나는데, 하루 평균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되 영하로 떨어지지 않을 때 가장 붉게 물듭니다.” ―김선희 씨(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사)
“첫 단풍은 산 전체의 20%가, 절정은 80%가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물론 매번 헬기 등을 띄워서 관측할 수 없으니 지정된 장소를 기준점으로 삼죠. 예를 들면 북한산의 경우 첫 단풍의 경우에는 태고사에서 정상 방향으로 약 1km까지 단풍이 들었을 때를 첫 단풍으로, 청수폭포 부근까지 단풍이 들었을 때를 절정으로 칩니다.” ―윤준성 씨(기상청 관측정책과 주무관)
“1989년부터 2014년까지 단풍이 물드는 시기를 관찰한 결과 2050년에는 11월이 돼야 단풍 구경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사람이 추워지면 겨울옷을 꺼내는 것처럼 단풍도 일정 수준으로 기온이 떨어지면 잎을 물들이기 시작해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초가을 기온이 높아지면서 단풍 시작 시기가 늦어지는 거죠.” ―박창균(29·서울대 연구원)
단풍을 즐기는 법
“사람도 나무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가을이죠. 사람은 연말을 앞두고 차분히 지난날을 되새기고,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기 전 낙엽을 물들이는 겁니다. 마무리를 잘하고 있다는 자연의 이치, 그것이 단풍이 주는 인문학적 매력이죠.” ―강판권 씨(56·계명대 사학과 교수)
“프로와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인천대공원이 단풍 출사지로 유명해요. 길 양쪽에 단풍나무가 줄지어선 단풍터널이 있는데, 새벽에 빛내림을 관찰할 수 있거든요. 빛내림은 태양빛이 나무나 구름의 빈 공간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는데, 오색빛깔이 단풍잎 사이로 떨어지는 장면이 굉장히 근사해요.” ―장모 씨(30대·사진동호회 회원)
“단풍 분재는 잎, 줄기, 가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아름다워서 분재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분재가 아니라도 단풍을 가까이에서 즐길 방법이 있습니다. 번식력이 좋아 가지를 꺾어서 화분에 꺾꽂이를 해도 관리가 쉬운 편입니다.” ―이화영 씨(49·한국분재조합 실장)
“14년 전 고향인 순천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식당을 열었습니다. 단풍이 유명한 고장이니 식당 이름에도 단풍을 넣고 단풍 수액을 넣어 식감을 부드럽게 한 단풍수액 두부를 만들었어요.” ―정왕균 씨(51·전남 장성군 ‘단풍두부’ 음식점 운영)
“교토에서 단풍튀김을 파는데 만드는 데만 1년이 걸려요. 소금에 1년 동안 절인 뒤 물기를 잘 빼고 튀겨야 단풍잎 모양이 유지되거든요. 사실 맛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세계적 단풍 명소인 교토에서 풍류를 즐기는 요리인 셈이죠.” ―김정은 씨(배화여대 전통조리과 학과장)
“선선한 가을날 단풍으로 둘러싸인 산을 걷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냥 산책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을 체감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주거든요. 한 해의 마감을 미리 알려주는 알람이랄까요?” ―이영자 씨(60·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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