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前 사회주의 혁명, 축하할 일 아닌 역사적 기억일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3일 03시 00분


[러시아 혁명 100년/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다]<上> 박물관 속의 레닌 혁명

《 1917년 11월 7일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후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 냉전의 시발점이 된 20세기 최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로부터 100년, 러시아인들에게 여전히 이 혁명은 자랑스러운 역사일까. 현지에서 만난 러시아인들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게 혁명을 평가하고 있었다. 3회에 걸쳐 사회주의의 그늘과 자본주의 전환의 몸부림을 들여다본다. 》
 
7일 낮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 러시아 동상 앞에서 공산당원 200여 명이 ”레닌을 살아있다”고 외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곳은 레닌이 1917년 혁명을 위해 입국했던 곳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7일 낮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 러시아 동상 앞에서 공산당원 200여 명이 ”레닌을 살아있다”고 외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곳은 레닌이 1917년 혁명을 위해 입국했던 곳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동정민 특파원
동정민 특파원
“지금 부자들의 변기는 금으로 돼 있다. 100년 전 오늘, 10월 혁명은 인민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안겨줬고 문맹을 없앴다. 나는 항상 소련이 다시 돌아오기를 갈망한다.”

칼바람이 불던 7일 낮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핀란드역 앞 레닌 광장. 러시아 혁명을 기억하기 위해 모인 공산당 집회 참석자 중 제일 앞에서 소련 깃발을 흔들던 78세 마리아나 나마로바 씨는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핀란드역은 1917년 4월 레닌이 긴 해외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러시아에 입국해 혁명의 불씨를 댕긴 곳이다. 공산당원들은 레닌 동상 밑에서 ‘레닌은 살아 있다. 자본주의는 꺼져라’고 외치며 빨간 장미를 헌화했다.

그러나 그 옆을 지나가던 한 40대 남성은 “오늘이 역사적인 순간이긴 하다. 레닌과 함께 땅에 묻힐 사람들이니…”라고 비아냥거렸다. 한 젊은이 무리도 “대책 없는 공산주의자들”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 이날 공산당 집회 참가자는 2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7일 오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안에서 혁명군이 점령했던 시계가 작동되자 안내원이 ”이럴 리가 없다”며 살펴보고 있다. 혁명군이 접수했던 오전 2시 10분에 오랫동안 멈춰 있던 이 시계는 10월 25일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7일 오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안에서 혁명군이 점령했던 시계가 작동되자 안내원이 ”이럴 리가 없다”며 살펴보고 있다. 혁명군이 접수했던 오전 2시 10분에 오랫동안 멈춰 있던 이 시계는 10월 25일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917년 11월 7일(당시 율리우스력으로 10월 25일)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인 겨울궁전은 혁명 100주년 기념 특별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이곳에 머물던 니콜라이 2세가 1917년 2월 폐위된 이후 임시정부 내각이 사용했던 곳이다. 겨울궁전의 방 탁상시계는 임시정부 인사들이 체포됐던 시각인 오전 2시 10분에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다.

그러나 7일 오전 이 방의 시계는 10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에 앉아 있던 안내원조차 “이럴 리가 없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어보니 책임자는 “지난달 25일부터 시계를 현재 시각에 맞춰 흐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혁명을 과거로 묻고 미래로 나가고자 하는 러시아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빵, 토지, 평화’를 앞세우며 노동자, 농민, 병사를 위한 소비에트 지도부를 구성해 모든 재산을 국유화했던 사회주의는 가난과 억압, 분열을 낳은 채 1991년 붕괴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러시아와 사회주의 시대 소련 중 어디를 선택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소련이라고 답한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러시아인 16명 중 3명뿐이었다. 13명은 지금을 택했다. 소련을 택한 3명은 모두 70대 이상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 냉소적이었다. 이들은 1990년 국내총생산(GDP) 5160억 달러에서 지난해 1조2830억 달러로 뛰어오른 자본주의의 풍요로움과 자유를 경험한 세대다.

시청에서 만난 아타롤리아 씨(78)는 “소련 시대에는 일자리 걱정이 없고 각자가 사회의 주체였다.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정치사박물관 앞에서 만난 안토니 군(18)은 “소련이 아닌 현대에 날 태어나게 해준 엄마에게 감사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반년만 소련에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자유가 없는 그 시절에 살기는 싫다”고 말했다.

사회주의에는 부정적이었지만 군주제를 무너뜨린 혁명에 대한 판단은 조심스러워했다. 지난달 컴퍼니 VTsIOM에 따르면 10월 혁명이 다수의 이익을 위해 필요했다는 응답과 소수의 몇 명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의견이 46%로 동일했다. 기자가 16명에게 100년 전으로 돌아가면 혁명에 참가하겠느냐고 묻자 10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2008년부터 러시아 혁명 재평가 작업을 진행해 온 국립 러시아정치사박물관 예브게니 그리고리에비치 관장은 “재평가의 결론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은 축하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인 기억의 대상이라는 것”이라며 “자유를 억압하는 한 사회주의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10월 혁명을 러시아 혁명이 아닌 쿠데타로 명명하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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