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출판계는 페미니즘과 정치 관련 서적에 대한 관심 급증, 노벨 문학상 특수와 국내외 스타 작가의 잇따른 신작 출간으로 알찬 한 해를 보냈다. 과학을 주제로 한 책과 작고 예쁜 문고본의 강세도 도드라졌다.
○ ‘페미니즘을 읽자’…장르 불문 신간 줄이어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을 필두로 ‘현남 오빠에게’(조남주 최은영 등), ‘다른 사람’(강화길), ‘아내들의 학교’(박민정)처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 현실을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본 소설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출간된 ‘82년생…’은 지난 주말 판매량 50만 부를 돌파했다. 이 중 49만 부가 올해 판매되며 ‘82년생…’은 한국의 여성 문제를 집약한 대명사가 됐다.
8월 내한한 페미니즘 사회운동가 리베카 솔닛의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도 화제를 모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출간된 페미니즘 관련서는 78종으로 지난해의 2배를 웃돌았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집계한 페미니즘 관련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의 8배를 넘었다.
○ 노벨상 신드롬과 스타 작가의 귀환
10월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그의 작품 판매량이 급증했다. 특히 ‘남아 있는 나날’(1989년), ‘나를 보내지 마’(2005년)가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작품을 포함해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 8종 가운데 7종을 낸 민음사에 따르면 최근 8년간 총 판매량은 4만 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 뒤부터 단 두 달 만에 그 4배에 육박하는 15만 부가 판매돼 노벨상의 힘을 실감하게 했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잠’, 댄 브라운 ‘오리진’, 황석영 ‘수인’, 김훈 ‘공터에서’, 김영하 ‘오직 두 사람’, 김애란 ‘바깥은 여름’ 등 국내외 스타 작가들이 새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이들 책은 모두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작가의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선인세 30억 원 설’로 이목을 끈 ‘기사단장…’은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실패와 아울러 작품성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주 동아일보가 출판 관계자 48명에게 청한 ‘올해의 책 베스트 5’ 설문에서도 1표를 받는 데 그쳤다.
○ 정치와 과학을 읽는다…대선과 인공지능 이슈
대선이 5월로 앞당겨지면서 정치 관련 서적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이 눈에 띄게 커졌다. 교보문고는 2017년 정치 분야 도서의 판매 부수가 지난해보다 21.5% 늘었다고 밝혔다.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판매량이 급증한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은 이 서점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1위,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는 3위에 올랐다. ‘지금 다시, 헌법’ 등 탄핵 관련 주제를 다룬 책들, 문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읽고 추천한 ‘명견만리’ 시리즈도 인기를 끌었다. 예스24 집계에서는 문 대통령을 표지 모델로 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5월 15일자가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인공지능 이슈로 힘을 얻은 과학책 붐도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4년부터 해마다 2∼4%씩 늘어난 과학서적 판매액은 올해 8.6%로 증가 폭을 키웠다. 9월에는 국내 최초 과학비평 전문지 ‘에피’와 만들기 키트를 부록으로 함께 증정하는 과학 잡지 ‘메이커스: 어른의 과학’이 출간됐다.
○ 더 얇고 가볍게…대세로 자리 잡은 ‘문고본’
서점가에서는 무겁고 두툼한 양장본보다는 가벼운 외형의 문고본 책이 주력 상품으로 발돋움했다. 먼저 4월 초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가 미리 주문한 독자에게 출판사가 추천하는 문고본 책을 정성껏 선물 포장해 발송하는 ‘개봉열독’ 이벤트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뒤이어 인터넷과 대형서점이 아닌 중소 규모 동네서점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한 민음사의 ‘쏜살문고 동네서점 에디션’, 위고 등 3개 출판사가 의기투합해 내놓은 ‘아무튼’ 시리즈가 등장했다. 이들 문고본 책은 박리다매가 목표였던 수십 년 전 문고본과 달리 세련되고 경쾌한 디자인을 앞세운 휴대용 아이템 상품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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