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엔지니어이자 아트 컬렉터인 루이스 콜더는 1938년 자동차를 몰고 뉴욕주의 작은 마을인 후식폴스를 지나다 한 잡화점에 들렀다. 그 가게에 전시돼 있던 그림에 관심이 간 그는 3달러와 5달러를 주고 두 점을 샀다. 그림 그린 화가를 수소문해 근처에 살던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를 찾아갔다. 당시 모지스의 나이 78세였다. 그날 모지스를 만나지 못한 콜더는 하루를 기다려 모지스의 집에 있던 10점을 모두 사들였다. 이듬해 모지스의 작품은 ‘현대의 무명화가들’이라는 제목으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며, 1940년에는 뉴욕에서 단독 전시회, 1949년에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초대까지 받게 된다. 모지스가 자신의 삶을 그림과 글을 통해 돌아본 자서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류승경 편역)를 쓴 것은 1952년, 92세 때였다.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우리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콜더가 모지스의 작품을 만나는 장면이다. 모지스가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어 그림을 시작했던 것 같지는 않다. 작품이 콜더와 같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평생 취미로 그림을 그렸을지 모른다. 처음 5달러 정도였던 작품은 후에 8000달러에서 1만 달러에 팔렸고, 2006년 한 경매에서는 무려 120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콜더처럼 내 재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노력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콜더가 후식폴스를 지나다가 그 잡화점을 들르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모지스가 작품을 잡화점에 걸어 놓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삶이나 직장에서 콜더와 같은 사람을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재능을 남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소셜미디어는 그런 표현의 장을 열어 놓고 있다.
둘째, 1953년 12월 ‘타임’지 표지 모델은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였다. 100세 생일에는 뉴욕시가 ‘모지스 할머니의 날’을 선포했다. 모지스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면서 화단과 평단에서는 그를 외면했다. 당시 미국 화단이 중시하던 추상표현주의가 아닌 소박하고 따뜻한 모지스의 작품이 가장 미국적인 그림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시기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화단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성공하게 되면 견제와 질시가 따르게 되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성공이란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제한적인 운이 큰 영향을 미친다. 운이 내게로 다가와 성공을 맛보는 순간이 있는데 승진이나 사업 성공의 상당수가 그렇다. 사회심리학에서는 기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는 개념이 있다. 타인의 성공에 대해서는 운이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하는 반면,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는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뜻한다. 나의 성공을 주변 사람들은 노력보다 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성공했을 때 왜 겸손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지스가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관절염으로 그동안 해온 자수를 할 수 없어서였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그는 바늘은 들지 못해도 붓은 들 수 있게 되자 평소 관심 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세상을 떠나던 1961년, 101세 생일까지도 거의 매일 조금씩이라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관절염이라는 악재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50세면 직장을 떠나는 시대가 되었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매일 조금씩이라도 즐길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모지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을 때 말이에요.” 올해에는 그동안 생각만 하던 것을 시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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