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제주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와 금등리 해안가. 이곳에만 있는 독특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앞바다 한가운데에 풍력발전기 10기가 늘어서 있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해상풍력발전소인 탐라해상풍력발전소다.
이 발전소는 육지가 아닌 바다에 있다. 지난해 9월 상용 운전을 시작해 이제 5개월 됐다. 2006년 개발사업 시행 허가를 받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상용 운전까지 11년이 걸렸다. 친환경 에너지원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지역 주민들은 풍력발전 소음 때문에 물고기가 안 잡힐까 걱정했다.
반대 끝에 운전을 시작한 지 5개월. 주민들은 소음 걱정은 덜었다고 말했다. 두모리 해녀 김언조 씨는 “걱정이 많았는데 해삼 소라가 잘 잡힌다. 동료 해녀들도 소음이 전혀 없어서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배를 타고 육지에서 제일 가까운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까지 갔다. 선풍기 약풍 수준인 초속 4∼5m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풍력발전기는 보통 초속 3m 이상이면 작동한다. 풍력발전기 소음 대신 바람 소리만 들렸다. 근처에서 돌고래 10마리가 뛰놀고 있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발전기 소음이 없는 건 아니다.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가 발전기 소음을 잡아 없애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슬리는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일종의 ‘백색소음’ 효과인 셈이다.
탐라해상풍력발전소는 두산중공업이 100% 국산 기술로 만들었다. 바닷속 20m 아래 암반을 뚫고 해수면을 기준으로 80m 높이의 풍력발전기를 세웠다. 만들어진 전기는 바닷속에 케이블을 따로 설치해 육지까지 끌어온다. 발전기 1기 용량이 3MW(메가와트)로 총 30MW 규모다. 연간 총 8만5000MWh의 전력을 만드는데, 제주도민 2만4000여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건설 비용은 육상 풍력발전기보다 약 2배는 더 들어간다. 비용은 높지만 바다에 풍력발전기를 지은 까닭은 바람과 소음 때문이다. 바다는 육상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이 많다.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없다. 무엇보다 발전기 소음이 없어서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육상풍력발전소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음이었다. 발전기와 발전기 날개가 돌면서 소리가 인근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기 때문이다.
제주 두모리 금등리 지역 주민들도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정석용 두산중공업 재생에너지팀 차장은 “어촌계, 해녀, 마을 주민 등을 밤낮으로 찾아다니며 9년 동안 설득했다. 마을에서 마음을 연 뒤에는 1년 5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고 말했다. 마을 대표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두모리 김상문 이장은 “지난 10년은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힘들었다”며 고개를 휘저었다. 김 이장은 “뒷돈 받고 일하냐는 원성도 들었다”며 “지금은 전국 최초의 해상풍력마을이라는 테마가 생겨서 자부심이 든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해양 자원 파괴를 가장 걱정했다. 해녀들은 해삼, 소라 등이 안 잡힐 것을 우려했고 어민들은 어류가 사라지진 않을지 염려했다. 아직까진 기우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금등리 해녀들은 할당된 1년 어획량을 9개월 만에 다 채웠다. 발전소 측은 수중 촬영을 통해 잠겨 있는 발전소 구조물이 어장 역할을 해서 해삼, 소라, 해초, 어류 등이 더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발전소 측은 마을에 다양한 보상을 해줬다. 금등리 고춘희 이장은 “그동안은 ‘리증세’(마을 주민들이 마을 발전을 위해 내는 일종의 세금)를 걷어서 마을을 운영했는데, 발전소와의 상생으로 마을이 더 윤택해졌다. 독특한 풍광에 제주 한 달 살아보기를 할 수 있는 숙소와 각종 복지시설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금등리와 두모리는 앞으로 ‘전국 최초의 풍차마을’이라는 주제로 해상풍력발전소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전력 공급량의 44%를 해상풍력으로 공급해 ‘탄소 없는 섬’을 만들 계획이다. 문제는 지역 주민의 반발이다. 제주도 내 지역 5곳에 해상풍력단지를 추진 중이지만 주민 반대로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홍성의 탐라해상풍력발전 대표이사는 “해상풍력발전소가 확장되는 데 제주 금등리와 두모리가 본보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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