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내셔널 갤러리서 열린 기획전, 한국 단색화 한 점도 전시 안해… 담당 큐레이터 “한국 작품 몰라”
“韓 단색화 해외 인정 받으려면 학술·미학적 가치 고민해야”
수년 전부터 불었던 한국 단색화 열풍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단색화를 주로 취급하는 국제갤러리는 2015년 기록했던 1120억 원이란 매출이 2016년 약 410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경매시장도 거래가 주춤하며 단색화 낙찰 총액도 갈수록 하향세다. 여전히 단색화가 미술계의 ‘안전자산’이라 보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이미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모노크롬: 페인팅 인 블랙 앤드 화이트’는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런던의 심장부 트래펄가 광장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 주최로 지난해 10월부터 열려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14세기 스테인드글라스부터 21세기 설치미술까지 세계의 모노크롬(단색화)을 통시적으로 다룬 기획전이었다. 마를렌 뒤마(남아프리카공화국)나 척 클로스(미국), 브리짓 라일리(영국) 등 동시대 작가도 다수 포진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 단색화는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전시를 4년 동안 준비했다는 큐레이터 렐리아 패커의 반응은 더 놀라웠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안하지만 한국 단색화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여러 작가의 이름을 언급해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패커는 미국 뉴욕대에서 모노크롬을 주제로 박사논문까지 쓴 전문가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상업 갤러리 일부는 한국 단색화를 알지만 학계 인지도는 낮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경매시장의 상품가치로만 접근하다 생긴 한계라고 지적했다. 연구·교육이 목적인 국립미술관은 역사적 가치를 중시하는데 단색화는 연구 실적이나 국제적 미학이 빈약한 실정이다. 허유림 독립 큐레이터는 “해외 경매도 정보가 공개되지 않기에 거래 실적만으로 신뢰도를 높이기는 어렵다”며 “해외에서 학술·미학적 인지도가 함께 확보돼야 가격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단색화를 하나의 독립된 사조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리처드 바인 아트 인 아메리카 편집장은 단색화가 때늦은 모더니즘으로 보일 우려가 있으며 한국 미술계가 이를 적극적으로 불식해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패커 큐레이터도 “재스퍼 존스 등 개별 작가의 모노크롬은 조명하지만 기법 자체를 다루는 전시는 없었다”며 “이번 전시도 최대 스케일로 모노크롬의 오래된 전통을 보여주는 게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지금부터라도 한국 단색화에 대한 냉정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계인이 인상파를 보러 파리를 찾듯 단색화가 국제적 인정을 받으려면 이미 수묵화로 이어 온 오랜 전통을 새 미학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해외 사정에 어두운 국내 컬렉터를 기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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