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추방 걱정없이 ‘미투’ 외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2일 03시 00분


성폭력 신고때 신원통보 면제… 법무부, 상담 창구도 늘리기로
성폭력 업주, 외국인 고용 못하게 제한

2월 27일자 A1면.
2월 27일자 A1면.
성폭력을 당하고도 국외 추방 우려 때문에 ‘미투(#MeToo·나도 당했다)’를 외칠 수도 없는 국내 이주여성들이 안정적으로 국내에 체류하며 성폭력 피해를 구제받는 길이 열린다. 언어 및 문화 장벽, 국내 여성에 비해 느슨한 법적 보호 때문에 이주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면서 정부가 관련 법과 제도를 대폭 손질했다.

법무부는 21일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담은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앞으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을 만나는 전국의 모든 공무원은 피해 입은 이주여성의 신원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규정에선 경찰, 검찰,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외의 공무원은 미등록 외국인이 성폭력을 당해도 출입국 당국에 통보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이주여성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출입국 당국에 신고당해 강제 퇴거될까 봐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이주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수사기관에 고소해 수사나 재판을 받는 기간엔 피해 여성이 미등록자(불법 체류자)여도 수사나 재판이 종료될 때까지 합법적으로 국내에 머물며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했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성폭력을 가한 고용주는 앞으로 외국인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가해 사실이 발견된 고용주는 외국인 초청 비자를 발급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주여성의 피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지금은 성폭력 외의 사행, 마약류 판매 등의 범죄를 저지른 고용주만 외국인 노동자 비자 발급이 제한된다.

피해를 당해도 외딴 한국에서 구제받을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주여성을 위해 상담 창구와 법률 지원 기회도 다양하게 마련된다. 정부는 외국인종합안내센터(콜센터 번호 1345)의 이주여성 성폭력 접수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현재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 상담 전화인 ‘다누리콜센터’가 마련돼 있지만 이주여성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상담창구를 대폭 늘리기 위한 조치다. 전국 18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지정된 인권·고충 상담관도 상시적으로 이주여성들의 고충을 상담할 계획이다.

민간 전문가인 외국인 권익 옴부즈맨도 출입국사무소별로 마련해 공무원들이 놓치는 인권 침해 사례를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조사하게 된다. ‘외국인을 위한 마을 변호사’도 이주여성을 돕는다. 이주여성들은 외국인종합안내센터를 통해 변호사를 소개받고 법적 절차를 문의할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이주여성은 지난해 12월 말 현재 98만9204명으로 최근 9년 만에 98%가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여성가족부의 ‘한국 여성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여성 근로자의 경우 성폭력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68.2%에 달했다.

법무부는 이날 종합대책 보도자료를 내면서 본보의 관련 고발 시리즈 ‘외칠 수 없는 미투’를 참고해 “이주여성의 ‘외칠 수 있는 미투’, 법무부가 함께합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미투#이주여성#추방#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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