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이 복잡하게 연결된 수많은 카메라가 아래위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렌즈가 향하고 있는 곳은 파란색 벽. 배경과 인물(피사체)을 컴퓨터로 합성하는 크로마키 촬영을 위한 벽이다.
이 카메라들은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널리 알려진 촬영 기법인 ‘타임슬라이스’ 영상을 만든다. 타임슬라이스는 시간이 멈추거나 느리게 가는 느낌을 주기 위해 특정한 순간의 피사체를 보는 각도를 바꿔가며 보여주는 촬영 방식. ‘타임슬라이스’ 영상 제작 솔루션을 개발하는 ‘4D리플레이’의 이상윤 상무는 “조만간 미국 측 고객과의 회의를 위해 미국에 가져갈 장비를 세팅하는 중”이라며 “평창 겨울올림픽 방송에서 기술을 선보인 뒤 해외에서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4D리플레이 작업공간 1층은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로 가득했다. 건물 지하에 있는 직원들은 카메라 장비를 매만지고 있었다. 이 회사의 정홍수 대표는 이미 고객사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난 상태. 평창 올림픽이 이 회사에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됐음을 알 수 있었다.
2012년 2월 창업한 이 회사는 처음에는 시스템 통합(SI) 분야에 집중하다가 2014년부터 영상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타임슬라이스 영상 기술이 알려진 지는 오래됐지만 영상 처리에 시간이 많이 필요해 영화나 광고 영상 위주로 쓰였고 스포츠 생중계는 편집 시간이 부족해 널리 이용되지 못했다. 4D리플레이는 영상 처리 기술에 강점이 있어 타임슬라이스 영상을 빠른 시간 내에 구현해 냈다. 그 덕분에 스포츠 생중계에서도 마치 매트릭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동시에 초고화질(UHD)급 해상도 영상을 제공하고, 가격 경쟁력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기술이 스튜디오 등 제한된 공간에서만 제대로 된 영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과 달리 4D리플레이는 경기장 같은 야외에서도 제대로 된 타임슬라이스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이런 기술이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투자와 협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KT. 5세대(5G) 이동통신을 준비하고 있는 KT는 5G로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영상 콘텐츠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4D리플레이 기술에 주목하고 협업을 제안했다. KT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4D리플레이를 2016년 6월 육성기업으로 선발해 보육공간을 제공하고 미국 등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 이후 KT는 투자까지 결정하고 지난해 11월 100만 달러(약 10억7000만 원)를 투자했다. 이 회사의 2016년 매출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당시 이 회사는 KT를 포함해 일본 및 국내 기업으로부터 총 45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4D리플레이의 기술은 지난해 6월 U-20 월드컵 방송 중계에 활용돼 호평을 받은 뒤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 중계에도 활용됐다. 특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단체인 올림픽방송서비스(OBS) 입찰에서 인텔과 경쟁을 벌였는데, 압도적 영상 처리 속도를 보여 입찰을 따낼 수 있었다.
평창 올림픽 경기 장면을 담은 4D리플레이의 영상은 KT 통신망을 타고 세계에 전해졌고, 크게 주목받게 됐다. 이상윤 상무는 “올림픽 이후 기존에 관심을 보였던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동유럽 등에서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4D리플레이는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에 영상을 제공하는 등 사업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고윤전 KT 미래사업개발단장은 “4D리플레이는 대기업과의 사업 협력과 투자를 통한 협력의 대표적 기업이 됐다”며 “앞으로도 KT는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과 다양한 협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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