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보드를 휩쓴 방탄소년단, 음원 차트를 휩쓴 힙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와 ‘쇼미더머니’. 힙합에는 위로, 허세, 분노, 공감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죠. 하지만 발라드나 록 같은 다른 음악은 위축되고 힙합만 득세해 문화적 다양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 힙합, 진솔한 이야기 ▼
“6·25 피란살이 때, 은행나무 아래 거적때기 깔고 공부해 초등학교 겨우 졸업했죠. 배움에 한이 맺혀 65세에 일반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뒤늦게 대학에 들어와 동기들과 친해지기 위해 랩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줄임말과 은어로 랩을 썼죠. ‘새내기 할아버지 듣보잡. 나의 볼매에 너희들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진다). 나의 로망은 젊음 현실은 열폭. 나는 미친 존재감.’ 반응이 엄청났어요. 힙합동아리 ‘토네이도’에 들어가 학교 공연도 하고 대전 은행동 거리에서 버스킹도 합니다. ‘쇼미더머니5’에도 참가해 래퍼 도끼에게 인정도 받았죠. 누구든지 은퇴하면 기도 죽고 막막해지는데 노년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이런 격려를 담은 자작 랩을 준비해 노년의 도전을 응원하는 강연회를 열고 싶어요.”―임원철 씨(74·한남대 도시부동산학과 4학년)
“중학생 때 ‘가난’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당시 노스페이스 패딩 등 고가 브랜드 옷이 유행했지만 저는 갖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죠. 어느 날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에픽하이 ‘Fly’의 ‘어두운 밤일수록 별은 더욱 빛나’라는 랩이 귀에 꽂혔어요. 그때부터 직접 랩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 이만큼 힘들었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청소년기의 제 상처를 랩으로 승화시켰죠. 군대에서 초등학생 멘토링을 하며 교사의 꿈을 꾸게 됐고 제대 후 수능을 준비해 교대에 입학했어요. 랩으로 위로를 얻은 제 경험을 밑거름 삼아 아이들의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랩 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김재현 씨(27·청주교대 힙합동아리 ‘g‘d up’ 회장)
“‘고등래퍼2’ 참가자인 이병재가 서울대생인 친누나와 고교 자퇴생인 자신을 비교하는 랩을 할 때 너무 공감됐어요. 당장 입시 사이트에만 가도 ‘몇 등급이면 어느 대학 간다’는 비교 글이 줄지어 나오니까요. 사실 꿈이 없는 10대가 많아요. 생활기록부에 쓰는 형식적인 장래희망만 있죠. 스스로를 믿고 길을 만들어가는 고등래퍼 참가자들이 멋지다고 생각해요.”―임새연, 장나원 양(18·이화여고 2학년)
▼ 낯설지 않은 힙합 ▼
“우리 세대도 랩을 했어요. ‘김김 삿갓삿갓 김삿갓 삿갓삿갓 1807년 개화기에 태어나 삿갓 쓰고 구름처럼 떠돌며.’ 홍서범의 ‘김삿갓’입니다. 얼마나 흥에 겨운지 몰라요. 요즘 젊은이들 못지않게 멋있었죠. 육십 넘은 사람들이 힙합을 모른다는 건 오해예요 하하.”―정해월 씨(60대·자영업)
“2014년에 음주운전 위험성을 알리는 ‘취중운전’이라는 힙합 곡을 발매했습니다. 현재 경북대에서 근무 중인 문종석 행정관(‘바비문’)이 전반적인 음악 제작을 맡고 저는 랩 작사와 피처링에 참여했죠. 음원 수익은 아동학대, 가정폭력 피해 아이들을 위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전액 기부했습니다. 랩은 시민분들께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였어요.”―안정호 경위(40·울산남부경찰서)
“‘브레인스워즈’는 학교 공연부터 외부 공연까지 다양하게 활동하는 흑인음악 동아리예요. 그레이, 로꼬(‘쇼미더머니1’ 우승자), 우원재(‘쇼미더머니6’ 톱3)가 활동한 곳으로도 유명하죠. 힙합의 대중적 인기가 올라가며 지원자가 30%가량 늘어 현재 활동 인원만 200명 정도 됩니다. 저희는 개인의 음악 취향과 작업을 서로 존중해요. 각자 개성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죠. 올해도 ‘쇼미더머니’에 지원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줄 거라 기대해요.”―오다빈 씨(26·홍익대 흑인음악 동아리 ‘브레인스워즈’ 회장)
“힙합이 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우리가 만들자’며 홍대 인근에 가게를 열었어요. 힙합 가수, 타투이스트, 음악과 비엔나커피를 좋아하는 분들까지 다양하게 찾아와요. 래퍼 스윙스도 왔었죠. 가게 이름 P.O.M(Peace of Mind·마음의 평안)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감성을 손님과 공유하고 싶어요.”―서유나 씨(31·힙합 카페&펍 ‘P.O.M’ 운영)
▼ 위로가 되다 ▼
“김하온의 ‘나쁜 건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랩에 위로를 얻었어요. 저희는 학업과 진로를 고민해야 하니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힙합은 어른의 음악인 줄 알았는데 이제 청소년에게도 와 닿는 음악이 됐어요.”―안종훈, 조준희 군(18·서울 중앙고 2학년)
“‘고등래퍼2’를 전부 본방사수했어요. 10대를 구속하는 사회 풍토에 대한 반발심을 험한 언어 없이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쟤네 중2병이야’가 아니라 ‘그렇구나, 저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는 랩이었죠.”―조연교 씨(23·대학생)
“젊은 친구에게 ‘고등학교 졸업 후 뭘 할 생각이니?’라고 물으니 바로 ‘알바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가슴이 먹먹해지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그런데 그 친구가 방송에 나왔던 노래 ‘바코드’를 부르더라고요. ‘삶이란 흐르는 오케스트라 우리는 마에스트로’라는 가사에서 저는 희망을 봤습니다. 빠르고 빽빽한 가사에 다소 과한 스왜그(우쭐거림) 음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힙합은 공감이 담겨 있는 진솔한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해요. 고등래퍼처럼 많은 이들이 속 시원하게 한숨을 뱉고 자유롭게 ‘붕붕’ 날아다니기를 기대합니다.”―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
“요즘 카페, 편의점, 옷가게 어디를 가도 힙합 음악이 들립니다. ‘40대 이상이 많이 듣는 노래 톱10’ 순위에도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라는 힙합 음악이 있죠. 저도 딸과 함께 아이돌그룹 위너, 아이콘의 방송 무대를 봤어요. 그런데 TV에 온통 힙합 관련 콘텐츠만 나오더라고요.”―이모 씨(53·회사원)
“사소한 고민거리부터 사회 문제까지, 고민한 흔적이 있는 랩이 좋아요. MC 스나이퍼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얼마나 절실하니 너의 꿈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니’라는 랩을 듣고 나태했던 저를 돌아보기도 했죠. 요새는 목적 없이 남을 헐뜯거나 무조건 ‘나 돈 많고 여자 많아’만 반복하는 랩이 많아 아쉬워요.”―박모 씨(25·대학원생)
“래퍼의 ‘돈 자랑, 자기 자랑, 디스 배틀’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나 힙합은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음악입니다. ‘겸손과 도덕’처럼 ‘성공을 뽐내고 싶은 마음과 분노’도 인간의 중요한 감정이죠. 물론 여성 혐오, 인종 차별과 같이 잘못된 혐오는 지양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이죠. 그러나 한국 특유의 ‘도덕우월주의’를 모든 부분에 들이대며 래퍼에게 ‘눈치 보기와 겸손’을 요구하는 건 다소 답답한 관점이 아닐까요? 힙합은 ‘남의 눈치를 보는’ 한국 사회에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힙합 치유에 관한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김봉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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