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검사는 결국 동일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3일 03시 00분


美 지방검찰청에 검사는 하나, 나머지는 모두 검사 보조일 뿐… 검사 동일체 원칙 萬國에 타당
검사가 동일할수록 수뇌 중요
검찰총장 국회 임명 동의가 권력구조 개헌의 최소한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미국의 각 지방 연방검찰청에는 단 1명의 검사가 있을 뿐이다. 가령 영화 ‘쓰리빌보드’의 배경인 미주리주에서 강간살인 사건을 다루게 될지도 모를 미주리주 서부 연방검찰청에 검사(District Attorney)는 티머시 개리슨 씨뿐이다. 이 검찰청에는 어토니(Attorney)로 불리는 사람이 50명이 넘지만 이 사람만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검사이고 나머지는 부검사(Deputy District Attorney)이거나 검사보(Assistant District Attorney)일 뿐이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공화국 검사(Procureur de la R´epublique)’라고 한다. 그 밑의 차장검사 부장검사 검사는 말이 검사일 뿐이지 모두 ‘공화국 검사’의 대리(代理·substitut)에 불과하다. 그리고 검사의 행위는 모두 검사 개인이 아니라 ‘검찰의 이름으로(au nom du parquet)’ 이뤄진다.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우리나라의 일부 검사들은 대한민국에 2000명의 독립된 검사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2500명의 독립된 판사가 있다는 말은 가능하지만 2000명의 독립된 검사가 있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판사는 독립해서 재판을 하지만 검사는 독립해서 수사하지도 기소하지도 못한다. 실은 지방검찰청 단위에서 보면 전국에 지방검사장이라고 불리는 15명의 검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는 말하자면 검사에 대한 정명(正名)이 제대로 된 나라다. 정명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은 정명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귤을 탱자로 만드는 이유다. 우리도 한 지방검찰청에서 법원에 대응할 검사는 한 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나머지는 부(副)나 보(補)를 붙여 불렀다면 평검사가 부장검사 지시를 어기고 맘대로 구형을 하거나 구속영장을 치고, 검사장에게 외압 운운하며 맞짱 뜨는 풍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바로 판사로 임용하지 않는다. 판사보로서 10년을 지내게 하고서야 판사로 임용한다. 판사보들이 주로 지방법원 배석판사를 한다. 우리나라도 지방법원의 합의는 사실상 배석판사들이 부장판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합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한 합의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일본처럼 판사보 정도로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독립해서 재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판사라고 부르니 판사가 다 된 것처럼 착각하고 10년도 안 된 판사들까지 사법행정권을 갖겠다고 날뛰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본은 검사의 경우 임용하자마자 바로 검사로 부르는 대신 검찰청법으로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지휘감독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독일이 같은 방식을 택한다. 미국 프랑스의 방식을 택하든 한국 일본 독일의 방식을 택하든 검사동일체 원칙은 어느 나라에나 다 통용되는 원칙이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도 충돌하는 생각들이 교차하는데 왜 조직에 의견 차이가 없겠는가. 다만 상하 간의 의견 차이는 내부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도 조율이 안 되면 상급자의 뜻을 따라야 한다. 하급자가 자신의 의견을 외부로 표출해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자신을 판사로 착각한 황당한 검사나 할 짓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강조할수록 검찰 조직의 최상부에 위치한 검찰총장에 대한 신뢰 확보가 중요해진다. 우리나라 검찰총장은 대통령 지명만으로 임명되는 결함이 있다. 최근 미국 상원에서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에 대한 인준 투표가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가결됐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모든 고위직에 대해 상원이 인준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상원 인준은 우리나라의 국회 임명동의와 거의 같은 구조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제왕화를 막기 위해서는 검찰총장을 비롯해 경찰청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개헌에서 권력구조 개편의 최소한이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이런 요구를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뻔뻔하게 의결시한인 24일까지 국회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야당도 국회가 국무총리 선출권을 가진 대통령제 운운하면서 권력구조를 통치 불가능의 짬뽕으로 만들려 했다. 정부와 여당은 좀 더 양심적이 되고 야당은 좀 더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검사#검사동일체 원칙#검찰#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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