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이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국민청원제도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죠. 한편으로는 무분별한 청원이 올라와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합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리며, 국민청원제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
▼ 내 얘기를 들어줘 ▼
“국민청원제도가 생겨 청소년도 쉽고 빠르게 의견을 낼 수 있게 됐어요. 저는 ‘만 18세부터 투표권을 부여해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청원에 동의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법 개정이 어렵다면 청소년이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선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모의 투표’ 활동이라도 보장해 주길 바라요. 교육감 선출엔 청소년 의견이 반영돼야 합니다. 교육과정 개편 논란이 일어도 정작 당사자 의견은 고려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신혜지 양(17·동국대사범대부속여고 2학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어디에 건의해야 하는지 답답했어요. 국민청원이 생기고 나서는 ‘미세먼지 조치·중국에 항의’ 청원에 동의했죠. 작년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부터 확인해요. 마스크 끼고 등교하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쓰럽죠.”―이곡춘 씨(52·회사원)
“소셜미디어와 같이 온라인 미디어가 소통의 가장 중요한 채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민청원제도 도입은 정부가 시민과 소통하는 통로를 다변화시키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어요. 어떤 여론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여론의 추이를 가늠해 볼 수도 있죠. 무엇보다 청와대에 의견을 표출하는 행위만으로도 시민들이 ‘우리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향상될 수 있어요. 이는 정치 참여를 유도하고 장기적으로 공론장을 활성화시킬 것입니다.”
―김태식 체코 마사리크대 미디어연구&저널리즘 전공 교수
▼ 빅데이터로 보는 국민청원 ▼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민청원에 대한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힘(6741)’, ‘소통(4283)’, ‘여론(3938)’, ‘결과(3093)’ 등에 대한 연관어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국민청원이 가진 ‘힘’을 보여주자는 의견과 청와대의 소통 방법에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어요. 또한 청원 결과를 알 수 있어 좋다는 반응도 높습니다. 긍정적 반응으로는 ‘공감(6472)’, ‘지지하다(3181)’, ‘동의하다(2773)’ 등이 높게 나타났어요. 자신이 올린 청원에 다른 사람들이 공감해주길 바라는 담론을 공유하는 것이죠. 부정적 감성어로는 ‘질리다(4162)’, ‘어렵다(2683)’, ‘분노(2331)’ 등이 나타났습니다. ‘질리다’의 경우 국민청원을 ‘대학교 대나무숲 게시판’에 비유해 ‘청와대 대나무숲’이라 부르며 사소한 일까지 국민청원에 올린다고 지적하는 반응이었습니다. 또한 청원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반응이 있어 ‘어렵다’ 키워드가 상위에 올랐습니다.”
―최재원 인공지능 빅데이터 회사 다음소프트 이사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민청원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내놓았어요. 작년 8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청원을 전수 조사한 것이죠. 그 결과 ‘인권·성평등’, ‘보건복지’, ‘안전·환경’ 분야 순으로 추천 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요.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로는 ‘아기’, ‘여성’, ‘학생’ 등이 꼽혔죠. 현재 우리 사회는 ‘약자였던 이들’에 대해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 청원에 동의했어요.”
―김준현 씨(27·대학생)
▼ ‘도 넘은 국민청원’ ▼
“청원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필요해요. 며칠간 ‘불법 누드촬영 스튜디오 사건’이 화제였어요. 1인 방송 진행자(유튜버) 양예원 씨가 피해 사실을 주장하자 스튜디오 상호와 위치가 적힌 청원이 올라왔고 가수 수지 씨가 동의해 화제가 됐죠. 해당 스튜디오 대표는 온갖 비난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스튜디오가 아니었어요. 지금 19만 명이 동의를 표했습니다. 수지는 사과했지만 ‘수지를 사형해 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고요. 처음에 사실 확인만 잘됐어도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보진 않았을 텐데 안타까워요.”―김수형 씨(30·금융업 종사)
“국민청원제도가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데 쓰여선 안 됩니다. 청와대가 국민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건 좋죠. 그런데 ‘태영호를 추방하라’, ‘탈북 종업원 북송하라’와 같이 위협적인 청원이 올라오고 이에 혹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어요. 오죽하면 ‘탈북민이 제3국 망명을 생각한다’는 뉴스까지 나오겠어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드루킹 댓글 사건’도 군중심리를 이용하려던 사건이었듯이 국민청원제도가 오용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김모 씨(60대·운송업 종사)
“‘방탄(BTS)·엑소(EXO) 군 면제’처럼 장난스러운 청원이 많이 올라와요. 이런 식으로 제도를 남용하면 대중 역시 ‘또 장난이겠지’라는 피로감 가득한 반응을 먼저 보일 것 같아요. 일종의 ‘양치기 소년 효과’죠. 저 역시 제도 도입 초기에 비해 관심이 줄어들었어요.”―조모 씨(23·대학생)
“중복 투표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현재 네이버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해 국민청원에 동의할 수 있어요. 그러나 트위터는 이메일만 있으면 계정을 무한정으로 만들 수 있어 사실상 무한 동의가 가능해요. 특히 성평등 관련 청원을 두고 ‘중복 투표’ 논란이 거센 것 같아요. 건전한 사회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시스템 결함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동의 수를 늘렸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사회 갈등’으로만 소비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홍성진 씨(27·대학생)
▼ 앞으로의 국민청원제도 ▼
“국민청원제도 도입 전에도 각 지자체마다 생활불편신고제도가 있었어요. 저 역시 사용해 봤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데 도로에 반사경이 없어 뒤에서 오는 자동차를 확인할 수가 없는 거예요. 생활불편신고 앱을 이용해 시청에 민원을 넣자 곧바로 반사경이 세워져 뿌듯했답니다. 기존 민원 제도를 정비해 잘 활용한다면 국민청원의 취지에 어긋나는 글이 올라오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혜경 씨(49·교직원)
“정치는 엄숙한 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실수하고 배우며 좌충우돌하는 게 시민정치예요. 우리는 어떤 청원이 20만 건이 넘는 동의를 받는지를 보고 청원에 적합한 주제와 방식을 깨쳐 가는 시민적 학습 과정 속에 있어요. 예컨대 ‘판사를 해임해 달라’는 청원은 20만 아니라 100만이 동의해도 행정부가 들어줄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못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거죠. 앞으로 청원 답변이 청와대에 그치지 않고 정부 부처가 청원을 연계 받아 정책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후속 작업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보장됐지만 ‘선출된 이들이 국민의 의사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에는 늘 의문이 제기됐었죠. 한마디로 답답한 국민이 많았는데 국민청원이 이를 해소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지만 이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국회나 사법부에 이런 청원 제도가 없어 국민청원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시민이 많을 겁니다. 국회와 사법부에서 자체적으로 청원 창구를 마련하는 방안도 필요해 보입니다.”―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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