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만난 한화 마무리투수 정우람에게 “팬들이 (등판하면) 편안해하더라”고 칭찬하자 ‘물 위에 뜬 오리’를 언급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타자들이 승리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후배 투수들이 잘 막아줘서 기록이 좋아 보이는 것일 뿐”이라며 동료와 팀에 공을 돌렸다.
‘팀 덕분’이라고 강조했지만 올해 정우람의 개인 성적은 역대급이다. 올해 ‘정우람 등판=한화 승리’ 공식을 만들며 28일까지 2승 19세이브, 평균자책점 1.17의 성적표를 거뒀다. 팀이 거둔 30승 중 21승을 정우람이 챙겨준 덕에 시즌 전 꼴찌 후보로 평가받던 한화는 전통의 강호 두산, SK와 3강 싸움을 제법 질기게 벌이고 있다.
세이브 페이스는 독보적이다. 2위권(10개)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오승환(토론토)이 2006, 2011년 기록한 한 시즌 최다 세이브(47개) 경신을 바라본다. 산술적으로 경기당 0.37개의 세이브를 올리고 있는 정우람은 현 추세대로라면 144경기 53세이브 이상도 가능하다.
정우람이 뒤에서 활약해주며 팀 전체에 선순환 구조도 생겼다. 서균 박상원 등 지난해까지 1군에서 보기 힘들었던 새 얼굴들이 선발과 마무리를 잇는 든든한 중간계투 요원으로 성장했다. 한화의 불펜 평균자책점도 3.33으로 1위다. 2위 KT(4.37)와도 1점 이상 큰 차이가 난다. 뒷문이 받쳐주자 타선도 경기 막판까지 힘을 내며 10개 구단 중 역전승(17승)이 가장 많은 팀이 됐다.
“팀이 강해지고 있고 그 일원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쁩니다. 개인 타이틀, 세이브 개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 의미가 없잖아요.”
정우람 본인도 강해지던 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성장해왔다. 2004년 SK에서 1군 무대에 데뷔한 정우람은 중간계투로 던지며 SK의 2007, 2008,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데뷔 후 8년 만인 2012년 처음 마무리 보직을 맡았는데, 마치 오래전부터 마무리 역할을 했다는 듯 그해 30세이브를 기록했다. 정우람은 “뒤에 던질 정대현 등 선배들을 믿고 던지면서 컸던 것 같다. 선배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닮으려 노력했다. 그때의 나처럼 후배들이 보고 배우길 바라며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우리 나이로 34세. 군에 간 2013∼2014시즌을 제외하고는 부상 없이 13시즌 동안 741경기를 구원투수로 활약했다. 매년 많은 이닝을 던져 ‘혹사 논란’이 그를 둘러싸고 일어났지만 선수생활을 하며 큰 부상을 입은 적도 없다. 정우람은 “좋다가도 당장 오늘 어깨나 팔꿈치를 다쳐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게 투수다. 항상 ‘하루’만 생각하며 오늘 하루 최고의 활약을 할 수 있게 몸과 마음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다 2016년 자유계약선수(FA)로 한화에 입단한 지 3년째 다시 가을야구 무대에 설 가능성도 솔솔 생기고 있다. 모범답안을 말하려던 그도 은근한 기대감까지 숨기진 않았다. “시즌이 길고 경기도 많이 남아 속단하긴 일러요. 여름이 지나면서 큰 위기도 찾아올 수 있지만요…. 근데 저나 선수들이나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웃음). 팀 분위기 자체는 여느 잘나가는 팀 못지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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