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길을 잃고, 보수야당은 심판을 받았다. 선거란 모름지기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다. 야당은 이를 위해 회초리로 사용된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오히려 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과거 집권세력 때의 잘못으로부터 철저한 단절을 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정권을 내준 이후에도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최근 1개월 온라인상에서 보수와 함께 거론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자유한국당이 나온다. 보수는 곧 한국당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단어들을 보면 미국, 북한, 평화, 남북정상회담, 통일, 판문점, 반공 등이다.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 속에서 보수가 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반대’하고 ‘비판’하고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결국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예전엔 진보정권의 남북 관계 개선이 한미 동맹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보수가 결집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어 한미 동맹이 훼손된다는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보수의 연관어 중 인물은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의 언급량이 가장 많다. 전직 대통령인 박근혜, 이명박, 박정희보다도 훨씬 많다. 선거에서 보수정당에 대한 대중 인식에 홍 전 대표가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변화, 가치, 혁신 등의 단어도 보이지만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등장할 뿐이다. 그 외에 과거, 극우, 막말, 분열, 몰락, 역풍 등 부정적 단어들이 많다. 긍정적 연관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연관어 중 이른바 ‘샤이 보수’도 있다. 보수야당은 샤이 보수층의 선거 막판 출현을 기대했다. 하지만 샤이 보수는 의미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니었다. 샤이 보수에 대한 온라인 검색 빈도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5월 대선 때보다 이번에 훨씬 더 높았다. 얼마나 샤이 보수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지 알 수 있다.
샤이 보수는 원래 선거가 끝난 후에 사후적 분석을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지금처럼 상시적으로 정치적 공세와 방어를 위해 남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현 정권의 국정에 문제가 발생해 여론조사에서 민심의 불만이 나타나는데, 정부 인사가 샤이 진보층이 응답하지 않은 것이라며 여론 결과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과도하게 샤이층을 얘기하면 민주주의 작동 메커니즘 자체가 제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한국당을 포함해 보수야당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백가쟁명식의 논의가 무성하다. 대중은 ‘보수의 가치관과 정체성 재정립’을 가장 높게 꼽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단순 통합, 당명 교체, 불출마 선언 등의 식상한 방안은 답이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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