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맥세트 즐기며 홀로 영화… 극장이 독서실 같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5일 03시 00분


[컬처 까talk]‘혼영족·혼공족’ 위한 공연계 변신

서울 신도림 씨네Q의 혼영족 특별관을 찾아 맥주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 관람을 즐기는 관객. 혼영족 특별관은 한 회차에 30여 명만 이용 가능한 소규모로, 리클라이너(전 자동 각도 조절) 의자와 독립적 공간 확보를 위한 개인 파티션이 설치돼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신도림 씨네Q의 혼영족 특별관을 찾아 맥주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 관람을 즐기는 관객. 혼영족 특별관은 한 회차에 30여 명만 이용 가능한 소규모로, 리클라이너(전 자동 각도 조절) 의자와 독립적 공간 확보를 위한 개인 파티션이 설치돼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러 온 커플이나 친구, 가족이 삼삼오오 몰려 있는 가운데 유독 상영관 한 곳의 풍경이 독특했다. 관객석은 하나하나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손잡고 영화 보기’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게다가 좌석마다 양옆에 높은 칸막이가 쳐져 있어 옆에 앉은 사람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유별난 영화관은 혼자 영화를 즐기는 관객을 위해 만들어진 ‘혼영관(혼자 영화 보는 이를 위한 상영관)’이다.

‘혼영관’은 1일 개관한 서울 영등포구의 ‘씨네Q’ 신도림점에 마련됐다. 씨네Q 관계자는 “최근 영화를 혼자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혼영족 가운데 특히 영화 마니아가 많은 점을 감안해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로 상영관을 꾸몄다”고 밝혔다. 영화관은 이런 혼영족을 위해 맥주 한 캔과 간단한 안주로 구성한 ‘혼맥 세트’도 판매한다.

혼영족을 위한 혼맥세트. 맥주 한 캔과 치킨 등 간단한 안주로 구성돼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혼영족을 위한 혼맥세트. 맥주 한 캔과 치킨 등 간단한 안주로 구성돼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요즘 영화 공연 등 문화산업에서 ‘1인 관객’은 최고의 핫이슈다. 문화콘텐츠를 홀로 즐기는 이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2년 CGV를 찾은 1인 관객은 전체의 7.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4년 9.2%, 2016년 13.3%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더니 지난해엔 17.1%까지 뛰어올랐다.

각 연령별로 살펴봐도 ‘혼영족’은 이제 상당한 관객 파워를 지닌다. 롯데시네마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영화관을 찾은 관객 가운데 30대 남녀는 1인 관객이 각각 16.1%, 13.4%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건 60대 이상 남성(13.9%)과 40대 남성(12.8%), 60대 이상 여성(12.1%)도 홀로 영화를 즐기는 비중이 만만치 않게 높다. 혼영족이 세대를 아우르는 흐름이 됐음을 보여준다.

티켓 값이 만만치 않은 공연계는 ‘혼공족(혼자 공연 보는 관객)’이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모양새. 국내 최대 공연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1인 1장 공연(뮤지컬 연극 콘서트 오페라 무용) 예매가 2005년 11%에서 지난해 43%로 거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최근 내놓은 ‘공연소비 트렌드 분석’에서도 혼공족은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자랑한다. 온라인 공연 티켓 예매율에서 1인 가구(29.5%)가 영·유아 가구(36%)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센터 관계자는 “실제로 올해 공연 트렌드 키워드에 ‘혼공(혼자 공연 관람)’ ‘나만의 모바일’ 등이 리스트에 올랐다”고 전했다.

혼공족들이 늘면서 관련 마케팅도 늘고 있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2월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린 ‘삼성카드 스테이지’ 공연에 ‘혼공석’을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도 뮤지컬 ‘아이다’ 공연 1인 예매 관객에 한해 전시회 티켓과 커피 잔, 화장품 등을 선물로 증정했다.

홀로 영화관과 공연장을 찾는 장점은 뭘까. 다수의 혼영·혼공족은 △취향대로 작품 선택 △작품 몰입 가능 △시간 선택의 자유로움을 꼽았다. 직장인 김승환 씨(31)는 “데이트를 위해 공연을 보면 상대방 취향을 고려해야 하지만 혼자 볼 때는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고 했다. 직장인 정모 씨(25·여)는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펑펑 울거나 마음껏 웃을 수 있어서 좋다”며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후원한 독립영화나 관객 참여형 연극처럼 주변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은 작품은 혼자 감상하기 좋다”고 말했다. 한 공연 관계자는 “과거에는 영화나 공연이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를 위한 것으로 인식된 반면에 최근에는 작품 감상 자체에 무게 중심을 두는 관객의 취향 변화도 엿보인다”고 진단했다.
 
김민 kimmin@donga.com·김정은 기자
#영화#혼영족#혼공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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