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움직임까지 표현… 언어로 이룬 아름다운 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3일 03시 00분


[제8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3>아일랜드 소설 거장 존 밴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발표해 온 존 밴빌은 2006년부터 ‘벤저민 블랙’이란 필명으로 ‘크리스틴 폴스’를 비롯한 범죄소설도 여러 편 발표해 영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다. ⓒDouglas Banville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발표해 온 존 밴빌은 2006년부터 ‘벤저민 블랙’이란 필명으로 ‘크리스틴 폴스’를 비롯한 범죄소설도 여러 편 발표해 영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다. ⓒDouglas Banville
《존 밴빌(73)은 명실공히 현대 아일랜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더 나아가 현재 영어권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밴빌은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등 아일랜드 태생 거장들의 뒤를 잇는 작가이지만 그 다음 세대답게, 이전 작가들과 구별되는 개성 있는 문학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2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작품 중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닥터 코페르니쿠스’와 ‘바다’만으로도 작가로서 밴빌의 독창적인 위상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닥터…’는 밴빌이 30대에 약 10년 동안 발표한 과학 4부작의 첫 작품이다. 이를 발표한 1976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상을 수상해 작가로 명성을 알리게 됐다. 이 작품은 중세까지 믿고 있던 천동설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이자 가톨릭 수사인 동시에 의사였던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전기적 소설의 양상을 띠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전기 소설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실제 코페르니쿠스가 쓴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의 출판을 둘러싸고, 중세의 막바지에 막 움트던 개신교와 가톨릭의 갈등은 아일랜드의 역사를 은연중에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광대한 우주의 진리를 마주하며 세계 변혁의 가능성을 일찍이 보아버린 한 천재 과학자가 그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협소하고 구차한 현실에서 겪는 고독과 꿈과 냉소를 여일하게 그려낸다. 결국 3세기나 지나서야 인정받게 되는 코페르니쿠스 저서의 운명은 젊은 작가 밴빌이 현대의 문학, 문명에 던지는 알레고리로 읽힌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과학 4부작을 작가의 문학적 세계관과 연결해 바라보게 한다.

“나는 문학을 하나의 형식으로 보지 않는다. 그건 너무 미성숙하고, 조야한 생각이다. 이 때문에 나는 문학을 변화시키고자 애쓰는 것이다. 내 삶의 가장 소박한 야망은 바로 소설이란 것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작가가 60세를 맞은 2005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맨부커상을 수상한 대표작 ‘바다’(사진)는 그의 야망대로 소설 장르를 통째로 바꾸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소설 언어의 절대미를 제시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밴빌은 인간 내면과 영혼의 미세한 움직임을 깊이 있고 관조적 성숙함을 담은 언어로 표현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바다’에서 프랑스 화가 보나르를 연구하는 미술사학자 맥스 모든은 암 투병을 하던 아내를 잃은 후, 유년 시절 잠시 머물던 바닷가 휴양지의 하숙집 ‘시더스’에 머물며 지나간 삶을 뒤돌아본다. 유년의 추억, 보나르에 대한 현재 자신의 저술, 고통스럽게 암 투병을 한 아내에 대한 기억 등 여러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직조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모든이 겪은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서사다.

상실과 고독,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밴빌의 문체는 문장마다 눈길을 머무르게 하는 강한 흡인력이 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진부할 수 있는 삶의 부침 이면에서 스러져 가는 모든 것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존재함을 보여준다. 남는 것은 아름다움으로 각인되는 작품의 언어다. 이처럼 이 작품은 밴빌의 소설적 이상의 한 축을 잘 전달하고 있다. 아름다움만큼 강한 존재의 혁명이 있겠는가. 바로 밴빌이 박경리 문학상 후보로 손색이 없는 이유다.


●존 밴빌은…

1945년 아일랜드 웩스퍼드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친 뒤 1969년 ‘아이리시 프레스’ 기자로 입사했다. 1970년 첫 단편 소설집 ‘롱 랭킨’으로 데뷔했다. 이후 30년 넘게 작가와 기자의 삶을 병행했다. 1988년부터 10년 동안 ‘아이리시 타임스’에서 문학 담당 기자를 했으며 1990년에는 문예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필진으로 참여했다.

대표작 ‘닥터 코페르니쿠스’, ‘증거의 책’을 비롯해 과학 4부작(‘닥터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레터’, ‘메피스토’), 예술 3부작(‘증거의 책’, ‘고스트’, ‘아테나’)으로 불리는 소설들을 출간해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함께 받았다. 가디언 소설상,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했다. 2005년 열네 번째 소설 ‘바다’로 맨부커상을 받았다.

최윤 소설가·서강대 교수
#박경리문학상#존 밴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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