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의 인생 영화]사람들 사이에 음식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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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영화 속 음식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
“매일 이렇게 가족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행복을 타고나야 하는 걸까?” 영화 ‘헬로우 고스트’에서 혼자 사는 남자 상만의 혼잣말이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고 외롭게 사는 상만은 매번 자살을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죽은 가족들이 상만의 자살을 결사적으로 막기 위해 귀신이 되어서라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홈 코미디이자 판타지물인 이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서야 사연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 이유가 관객들의 눈물을 쏟게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미나리가 피를 맑게 해줘서 좋아.” 생전 시금치 대신 미나리를 넣어 어린 상만에게 김밥을 만들어줬던 엄마의 이야기가 반전과 눈물을 담당한다.

미나리김밥에 얽힌 사연이 흥행의 일등공신이었다면, 영화 ‘우리들’의 ‘오이김밥’은 주인공 선의 친구에 대한 우정과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좋아하는 지아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엄마를 졸라 김밥을 만들어달라고 조른 선은 정작 친구 앞에서 “너랑 같이 먹으라고 싸주신 건데 먹기 싫음 안 먹어도 돼”라며 애써 태연한 척한다. 결국 무참하게 그대로 놓인 오이김밥은 선을 슬프게 한다. 그런 아이를 보듬어주는 건 또, 엄마의 부드러운 계란말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시원한 오이콩국수나 따뜻한 고추장수제비는 온전히 혜원이 직접 만들어 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음식이다. 그러나 더 특별히 푸근하게 다가왔던 장면은 직접 빚어 만든(헐) 막걸리와 단호박전 김치전을 앞에 두고 혜원과 친구들이 마주 앉은 밤늦은 시간 식탁의 풍경이다.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라면이 된 건 ‘봄날은 간다’의 봉지 라면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로 인구에 회자되는 “라면 먹을래요?”는 여자와 남자의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인 이 영화의 명대사다. 은수가 라면을 끓여주고 상우가 먹은 그날 밤 이후 둘의 사랑은 가깝고 뜨거워진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사랑하는 이를 무작정 기다리느라 허기진 의뢰인 상용에게 건네는 병훈의 컵라면은 이 둘을 이어주는 ‘호의’의 매개체이다. 도로 뱉어낼 만큼 뜨거운 컵라면은 웃음과 더불어 식욕도 자극한다. 한참 시간이 지난 영화 ‘세상 밖으로’에서 탈옥범 성근과 경영 그리고 인질 혜진이 절박한 도주의 길 위에서 사먹는 짜장면은 그 어떤 음식보다 달고 맛있어 보인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한 동네에 사는 민재와 영재 형제, 그리고 홀로 사는 나옥분 할머니는 추석을 맞아 함께 모여 음식을 해 먹는다. 옥분 할머니가 지글거리는 기름에 부쳐 만든 생선전을 입에 넣은 고등학생 영재는 “생선전이 이런 맛이었어?”라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김밥과 계란말이, 라면과 짜장면, 수제비와 생선전 같은 소박한 음식들은 영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온기와 의미의 옷을 입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한국 영화 속 음식들은 또 다른 형태의 ‘관계 맺기’이며 ‘진짜 감정’의 무엇이다. 끊임없이 소비되는 ‘먹방’의 시대에도 좋은 영화들 속 음식엔 소박한 품격이 있다. 추석 명절, 누군가만 힘들지 않고, 모두 함께 따뜻하고 맛난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면 좋겠다.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
#아이 캔 스피크#시라노 연애조작단#영화 속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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