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믿지 못하는 시대이다. 스포츠 경기에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오래된 얘기가 있지만 대중에게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심이 잦으면 팬들은 떠나고, 해당 스포츠의 인기가 시들해지곤 한다.
우리 사회의 최고 권위 심판은 단연 사법부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는 않았지만 근대 민주국가 체제에서 확립된 3권 분립에 따라 사법부에 그 역할이 맡겨졌다. 우리 대법원 앞에 세워진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처럼 자신의 눈을 가리면서까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불편부당한 판결을 내리려는 노력이 있었고, 그래서 사회는 그나마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스포츠 경기에서 비난받는 심판과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사법 신뢰도는 34개 회원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에 포진해 있다. 더 이상 악화되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최근의 부정적 기류가 반영되지 않은 2015년 조사였다는 점에서 지금은 더 나빠졌을 수 있다. 고결함을 갖춘 현대판 선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사법부를 존중해 왔던 국민들의 인식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을 쏟아내는 블로그와 트위터에서 지난 한 달간 사법부 연관어 중 감성이 담긴 단어들을 살펴보면 부정 일색이다. ‘범죄’가 상위에 올라 있다. 그 외에 ‘의혹’, ‘적폐’, ‘웃기다’, ‘증거인멸’ 등이다. 이런 불만과 불신의 단어들이 함께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사법부뿐 아니라 전체 국가 차원에서도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불법을 다스려야 하는 기관이 불법에 연루된 기관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사법부(司法府)’가 아니라 ‘사법부(死法府)’가 되었다는 세간의 조롱이 나올 만도 하다.
최근 사법부 사태를 정치적 이유로 신중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힘을 크게 얻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온라인에서 ‘사법농단’을 검색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연일 미디어에서 전직 대법원장과 전직 고위 법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재판거래 의혹을 받으면서 올 5월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법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도는 군대, 중앙부처, 경찰보다 낮다. 이들 기관이 40%대를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법원은 30%대에 그쳤다. 국민적 감정이 좋지 않고 사익 추구의 대명사인 대기업 신뢰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가 아무리 망가진다 해도 고고하게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최후의 버팀목이어야 한다.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감시자는 누가 감시한단 말인가”라는 한탄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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