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부터 한 학기 동안 매주 금요일 한 대학교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 중 하나는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놓고 스스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번 주가 마감이라 학생들의 과제물을 하나씩 읽어 가는 중이다.
이 과제를 낸 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찾는 데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분야가 유망할 것인가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0, 40대 직장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쩌면 우리는 늘 주변 환경만 분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정작 ‘제품’에 해당하는 자신에 대한 분석, 즉 자신이 어떤 것에 흥미가 있고 가능성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세상과 회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학생들이 이번 과제를 수행한 방식이 직장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 소개해본다.
먼저 자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기초 자료가 필요하다. 학생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학교 상담실 혹은 외부 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활용하여 심리진단이나 업무 선호도 검사를 받았다. 아마 직장에서 이런 검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진단은 설문에서 답한 것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과 보고서가 나온다.
분석 결과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맞는 점들을 발견하고는 신기해하곤 하지만 그 후 이 내용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결과지를 읽거나 간단한 설명만 들었을 뿐 성찰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과지를 보면서 우선 자신이 동의하는 것, 즉 자신도 알고 있었던 자기 모습과 자신이 보고 놀란 점, 자기도 모르고 있었을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결과지의 내용과 연관되는 자기 삶의 다양한 경험을 생각해 보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적었다. 이처럼 객관적 조사 결과를 개인적 삶의 역사와 연결하는 작업이 꼭 필요한데 혼자서 솔직하게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학생들은 자신을 아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질문했고, 그 결과를 진단 결과와 자신의 경험에 연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대리자적 상태(agentic state)’를 벗어날 것을 권유했다. 대리자적 상태란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인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의 복종’에 나오는 개념으로 자기 자신을 누군가의 소망을 실현하는 존재, 즉 대리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말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부모가 내게 무슨 기대를 갖고 있는지 생각하거나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직장을 생각하기 이전에, 정말로 자신의 욕망과 흥미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라는 뜻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의 단서를 자신의 역사에 대한 성찰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막연하게 부모가 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까 하다가 이번 수업을 통해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나 역시 그 학생을 보며 기뻤다.
우리는 대부분 ‘살던 대로’ 산다. 때론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걱정하지만 다시 관성대로 살아간다. 이제 연말 연초가 되면 아마도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거나 TV에서 나오는 강연을 보며, 혹은 이런 칼럼을 읽으며 모두 ‘자기계발의 시간’을 잠시나마 가질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 책, 칼럼, 강연보다는 ‘나를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약간의 비용을 들여 관심이 가는 진단을 받아보고, 그 결과지와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남의 글을 읽기보다는 내가 직접 나에 대한 글을 써봐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나는 지금까지 어떤 경험을 해왔고, 그 경험들이 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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