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가 목장 뒤뜰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연기를 내뿜길 몇 차례, 이윽고 머큐리는 악상이 떠오른 듯 피아노 앞으로 돌아가 ‘보헤미안 랩소디’의 도입부를 연주한다. 머큐리가 음반사 대표와 담판을 짓거나 연인과 통화할 때도 그의 손엔 어김없이 담배나 술병이 들려 있다.
9일 국내 누적 관객 700만 명을 넘겨 역대 음악영화 최고 성적을 기록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장면들이다. 이 영화는 세대를 뛰어넘어 전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지만 ‘12세 이상 관람가’로 분류된 것을 두고 의외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머큐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흡연과 음주 장면이 끊이지 않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음주 및 흡연 장면이 있지만 12세 이상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소화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영화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했다.
10일 올해 개봉한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중 관객 수가 가장 많은 5편과 15세 이상 관람가 중 흥행 상위 5편 등 총 10편을 분석해 보니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직접적인 흡연 및 음주 장면이 19차례 등장해 빈도가 가장 잦았다. 같은 12세 관람가인 △신과 함께―인과 연 △쥬라기월드: 폴른 킹덤 △앤트맨과 와스프 등 3편에 등장하는 흡연 및 음주 장면은 각각 1차례에 불과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한 차례도 없었다.
한국 영화는 외화보다 흡연과 음주 장면이 더 자주 나왔다. 마약 조직과 수사관의 대결을 그린 ‘독전’에는 흡연과 음주 장면이 15차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선 마약을 제조하거나 코로 들이마시는 장면까지 나오지만 15세 관람가로 분류됐다. ‘암수살인’과 ‘마녀’에는 관련 장면이 각각 8차례, 5차례 나왔다. 한국 영화에선 흡연 및 음주 장면이 편당 평균 7.3회 담겨 있어 외국 영화(평균 5.6회)보다 많았다.
영화 속 흡연과 음주가 청소년의 모방 욕구를 자극한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정민수 동덕여대 보건관리학과 교수가 2016년 10월 고등학생과 대학생 955명에게 영화 속 흡연 장면을 보여준 뒤 조사해 보니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는 응답이 영화를 보지 않은 비흡연 청소년의 6.9배로 나타났다. 음주 장면이 청소년의 폭음 위험을 13% 증가시킨다는 외국 연구 결과도 있다.
외국에선 영화 속 흡연 장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미국영화협회(MPAA)는 2007년부터 청소년 관람가 영화에서 흡연 장면을 퇴출시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PG-13(13세 미만 부모 동반 요망) 영화 중 흡연 장면이 포함된 작품의 비율은 2002년 65%에서 지난해 38%로 줄었다. 인도는 어느 배급사가 흡연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많이 배급했는지 매년 집계해 공개한다.
전문가들은 모호한 영상물 등급 분류 기준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등위는 약물 사용(흡연 및 음주) 장면이 ‘전체 맥락상 간결하게 표현된 것’이면 12세 관람가를 부여한다. 15세 관람가는 약물 사용 장면이 나오되 ‘반복적이거나 지속적’이지 않다면 문제 삼지 않는다. 매우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셈이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흡연과 음주 장면이 들어간 영화의 포스터엔 연령 제한과 별도로 ‘흡연’과 ‘음주’ 아이콘을 붙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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