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를 남긴 가람 이병기. 그는 시조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 논문인 ‘시조는 혁신하자’를 썼고 서지학, 국문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국어국문학 및 국사에 관한 방대한 문헌을 수집해서 서울대에 ‘가람문고’가 설치됐다. 묻혀 있던 고전 작품들, ‘한중록’ ‘인현왕후전’ ‘요로원야화기’ ‘춘향가’를 비롯한 신재효의 판소리 등을 발굴했다. 선생의 글씨를 분석해 보면 감성보다는 이성이 발달하고 올곧아서 시인보다는 학자나 지사에 더 어울린다. 하지만 선생이 남긴 주옥같은 시조들을 보면 시인이나 예술가에게는 감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올곧기 어렵다는 주장은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정확한 정사각형을 이루고 균형이 잡혀 있는 글씨는 독창적이지 못하고 배운 대로 하며 보수적이고 이성적이며 조심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회주의적 성향이나 변덕스러움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연성이 떨어지고 경직된 글씨는 의지가 강하고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모음의 시작과 끝에 삐침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의지가 매우 강한 것을 알려준다.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을 뿐 아니라 그의 후기시조는 비리의 고발, 권력의 횡포에 대한 저항이 담겨 있다.
선생의 글씨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느린 글씨는 정확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들이 주로 쓰는데 학자, 완벽주의자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글자 간격이 유난히 좁은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자기표현과 자기 인식에 엄격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새롭거나 다른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규칙성이 두드러져서 신뢰할 만하고 의지와 집중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자를 이루는 부분 사이의 공간에 여유가 있고 부드러움도 간간이 보여서 스스로 제자복, 화초복, 술복이 있는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고 자처할 수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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