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진의 필적]〈38〉활달한 지략가 조만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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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척 단구에 머리를 빡빡 깎아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던 조만식 선생. 3·1운동 때 평양에서 만세운동을 지휘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평생 한복을 입었고 국산품 애용이 나라 사랑의 지름길임을 강조하고 조선물산장려운동회를 조직해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후 신탁 반대 운동을 펼치다가 소련군 사령부에 잡혀갔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아 6·25전쟁 때 평양형무소에서 공산당에 의해 살해됐다. 선생의 필체는 고지식한 지식인과는 거리가 멀고 비상한 머리와 행동력을 겸비한 지도자에 가깝다. 선생은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민족주의에 감동을 받아, 간디의 사상을 자신의 독립운동의 거울로 삼았다고 전하는데 작고 균일하며 정돈된 간디의 글씨와는 아주 다르다.

독립운동이나 반탁운동을 가능하게 한 강한 의지는 획의 마지막 부분에 삐침이 두드러지고 필압이 강한 데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선생은 ‘내가 죽으면 비석에 두 눈을 그려 주시오. 내 죽어서라도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보고야 말리라’라고 유언할 정도로 독립정신이 강했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을 위해 살다 갔다는 찬사를 받는다. 키는 작았으나 담대했고, 얼굴빛과 흰 머리카락은 청초한 모습이었으며 낭랑한 음성으로 열띤 웅변을 할 때는 듣는 사람마다 공명을 얻어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전한다.

글씨의 가장 큰 특징은 크고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이는 활력이 충만하고 두뇌 활동이 활발하며 성격도 활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생은 이름난 술꾼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좁은 행 간격과 크기 등의 불규칙성이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데 열정적이고 따뜻하며 마음이 열려 있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하는 정치인의 자질을 갖추었다. 선생은 북한 동포와 월남 동포의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공산당원도 그 인격 앞에 겸손하게 절을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존경받는 인물들은 주로 화통함과 따뜻한 인간미를 갖췄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3·1운동#조만식 선생#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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