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몇 살에 처음 영어를 배우면서 인상적이었던 단어가 ‘nothing’과 ‘nobody’였다.
마치 0의 존재와 같았으니까. 존재하지 않는 존재. 그 역설적인 실재들. 이 단어들이 들어간 노래 제목을 볼 때마다 묘하게 조금 설렜다. ‘Nothing Else Matters’(메탈리카)나 ‘Nothing Compares 2 U’(시네이드 오코너),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에릭 클랩턴)…. 어쩐지 슬픔이 날 덮쳐 달콤하게 무너뜨려줄 것만 같았는데 그 예상은 대개 들어맞았다.
비교적 최근 날 무너뜨린 ‘0’이 있다. 일본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미츠키의 노래 ‘Nobody’(사진)다. 미츠키는 말레이시아의 호텔방에서 이 노래를 썼다. 아시아 공연을 마치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됐고, 그 성수기에 미국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비싸게 끊느니 말레이시아에 며칠 머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 미츠키에게 엄습한 것은 평화와 여유라기보다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미국에 있는 친구들은 저마다 행복한 연말 휴가 이야기를 전해오는데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국에 떨어진 미츠키는 끝내 호텔 창문이라도 열어젖히기로 한다. 거리의 분주한 소음이라도 들여 고립감을 쫓아내려 한 것이다. 그렇게 나온 ‘Nobody’는 뜻밖에 흥겨운 리듬의 곡이다.
‘오, 나는 외로워/그래서 창문을 열지/사람들 소리를 들으려….’
네 박자로 쿵쿵대는 베이스드럼, 엇박자로 사각대는 하이햇, 펑키한 기타가 자아내는 디스코 리듬이 호텔방 속 1인 무도회로 청자를 초대한다.
‘사랑의 행성, 금성은/온난화로 파괴됐지/사람들이 너무 많이 (사랑을) 원한 탓일까?’
하향 선율로 ‘Nobody, nobody…’를 반복하는 후렴구는 긴장음을 품고 이미 비틀거린다. ‘0’과 혼자의 2인무는 그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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